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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유다서

사랑이라는 이름의 희생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7. 2.

결혼 5년 차 부부에게 아침은 언제나 전쟁입니다. 아이 둘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는 그 짧은 한 시간 동안 두 사람은 서로에게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못합니다. 그러다 문득 아내가 묻습니다. "우리 요즘 사랑하고 있는 걸까?" 남편은 선뜻 대답하지 못합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어디로 갔을까 싶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사랑이 사라진 게 아니라, 사랑의 얼굴이 바뀐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설렘의 얼굴에서 희생의 얼굴로 말입니다.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열다섯, 한창 형과 어깨동무하고 텔레비전을 보던 나이였습니다. 형에게 밀리다 뾰족한 것에 눈을 찔렸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 사고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나빠졌고, 설상가상으로 방학 숙제를 하다 남은 한쪽 눈에마저 연필 가루가 들어가면서, 소년은 완전한 어둠 속에 남겨졌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앞을 못 봤다면 그 어둠에 적응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멀쩡히 보던 세상을 하루아침에 잃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이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소망이라는 단어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소 한 마리를 사다 주었습니다. 소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발굽에 밟히고, 뿔에 받히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렇게 나이만 먹어갔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기꺼이 오려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제수씨의 제안으로 중국까지 가서 맞선을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거절당했습니다. 두 번째 맞선에서 상대는 마음을 열었고, 약혼까지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파혼 통보가 왔습니다. 가슴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여자의 마음이 다시 돌아섰고, 두 사람은 서른일곱의 나이에 마침내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감았던 눈이 다시 열렸습니다. 27년 만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자기 아이들의 얼굴을 두 눈으로 마주한 순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서 세월이 천천히 갔으면 좋겠어요."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아내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남편 곁을 지켜준 그 세월, 아내의 희생이 없었다면 이 행복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젊은 부부의 집, 남편은 컴퓨터 회사에서 일하며 종종 집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17평 연립주택, 넉넉지 않은 그 집에서 작은 방 하나는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일도 하고 책도 읽는 자신만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면서 그 방은 아기 방이 되어버렸습니다. 책상과 책장이 사라지고, 아기 옷장과 장난감, 침대가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참아왔던 서운함이 어느 날 터졌습니다. "
책상을 치워버리면 난 대체 어디서 일하라는 거야? 이 집엔 아이밖에 없어? 왜 나만 다 희생해야 하는 건데?" 소리를 지르자 놀란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내는 말없이 아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화가 난 채로 집을 나섰습니다.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그 짧은 시간, 마음속에서 다른 그림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것도 아내였습니다. 날씬했던 몸매가 변한 것도 아내였습니다. 자기 시간 전부를 아이에게 쏟으면서도 단 한 번 불평하지 않고 남편의 짜증까지 받아준 것도 아내였습니다. 책상 하나에 소리친 자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꽃다발을 사 들고 돌아온 집, 문을 열자 거실에 아내의 화장대가 나와 있었습니다. 화장품은 다 치워지고 그 자리엔 스탠드와 노트북, 그리고 부부와 아기가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옆에 쪽지 한 장, "
여보,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에요."

이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단순합니다. 행복한 가정의 뒤편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 시력을 잃은 남편 곁을 떠나지 않은 아내, 자기 공간을 아이에게 내어주고도 원망하지 않은 아내, 둘 다 겉으로는 손해 보는 선택이었지만, 그 선택이 결국 가정을 지켜냈습니다.

젊은 부부들이 종종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사랑은 설렘이 지속되는 상태라고, 희생이 필요해지는 순간 사랑이 식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나를 향해 있던 삶의 방향을 상대에게로, 그리고 아이에게로 돌리는 일, 그것이 결혼이고, 그것이 가정입니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은 결국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랑은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이 인류에게 참된 행복의 길을 열었듯, 부부 사이의 작은 희생들이 쌓여 진짜 행복한 동행을 만들어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부부는 작은 것 하나로 다투고 있을지 모릅니다. 누구의 시간이 더 소중한지, 누가 더 많이 참았는지를 따지며, 하지만 그 다툼의 끝에서 발견해야 할 것은 승패가 아니라, 상대가 이미 얼마나 많은 것을 내어주고 있었는지에 대한 뒤늦은 깨달음입니다. 이타적인 사랑만이 진짜 행복을 만듭니다. 자기 삶을 포기하고 헌신하는 자리에서 오히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새 삶이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 각자의 집에도 누군가 조용히 내어준 '
책상' 하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발견하는 눈, 그것을 희생이 아니라 사랑이라 부를 줄 아는 마음, 그것이 바로 행복한 동행의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