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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사랑인가, 욕망인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1.

결혼한 지 15년 된 한 자매님이 상담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남편을 정말 사랑해요. 그런데 요즘은 남편 얼굴만 봐도 화가 나요.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안 해줄까 싶어서요." 그녀는 남편이 퇴근 후 소파에 눕는 것도, 주말에 낚시를 가는 것도, 심지어 반찬 투정을 안 하는 무던한 성격조차 서운했습니다. "예전엔 그런 게 다 좋았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일까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생각합니다. 사랑이 시작될 때 우리는 상대방의 존재 자체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새 그 사람이 '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슬며시 자리를 잡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욕망으로 변질되는 순간입니다.

사랑과 욕망은 겉모습이 너무 닮아서 구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둘 다 "
그 사람이 소중하다"는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의 방향이 다릅니다. 욕망은 상대방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마음입니다. "당신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어", "왜 내 마음을 몰라줘"라는 말 속에는, 상대를 나의 기대에 맞춰 조정하고 싶은 갈망이 숨어 있습니다.

반면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관심에서 나옵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나요", "당신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 태도입니다. 작은 일로 부부싸움이 잦아지고, 사소한 의견 차이에도 서로 예민해진다면, 그것은 사랑이 식은 것이 아니라 사랑이 욕망으로 미끄러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욕망을 느끼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더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그 사람이 지금 이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이 모든 것이 욕망의 형태입니다.

문제는 이 욕망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것을 사랑이라 착각하며 상대에게 강요할 때 생깁니다. 마치 정원사가 나무를 사랑한다면서 자기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계속 가지치기만 한다면, 그것은 나무를 위한 사랑일까요, 정원사 자신의 만족을 위한 욕망일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 둘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잠시 눈을 감고,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3초만 멈춰 서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봅니다.
'저 사람이 지금 가장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사랑의 표현은 무엇일까?' 이 짧은 질문 앞에 서는 순간, 우리는 나의 욕망을 잠시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비로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여백이 생깁니다.

앞서 이야기한 자매님도 이 훈련을 시도했습니다. 남편이 소파에 눕는 모습에 화가 치밀어 오를 때, 잠시 멈춰서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답은 뜻밖에 단순했습니다. 남편은 하루 종일 사람들 사이에서 시달리다 온 후, 그저 아무 말 없이 쉴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그녀의 잔소리는 조용히 곁에 앉아주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상대방이 "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때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자기를 초월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나의 기대, 나의 욕망, 나의 방식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자리에 서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의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허물을 조건으로 내걸지 않으시고, 먼저 다가와 받아주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그 사람 그대로 품는 것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려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
나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욕망하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 진짜 사랑을 향한 첫걸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