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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선택, 그 거룩한 책임에 대하여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7. 29.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인생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인생이란 B(Birth, 탄생)와 D(Death, 죽음) 사이의 C(Choice, 선택)이다." 무신론자였던 그가 남긴 이 말이 역설적이게도 오늘 우리에게 깊은 신앙적 통찰을 던져줍니다.

몇 해 전, 한 요양병원에서 봉사하던 중 한 권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아흔을 바라보던 그분은 자녀들이 정해준 병원에서 정해준 병실, 정해준 일과표대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손을 붙잡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목사님, 나는 평생 남이 시키는 대로만 살았어요. 아버지가 정해준 남편과 결혼했고, 남편이 정해준 대로 살림했고, 자식들이 정해준 대로 늙어가고 있어요. 정작 내가 선택한 인생이 뭐였는지 모르겠어요."

그 고백은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생활조차 "
교회에서 하라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라는 이유로 떠밀려 살아갑니다. 새벽기도를 나가는 것도, 헌금을 하는 것도, 말씀을 묵상하는 것도 자신의 결단이 아니라 관성과 눈치의 산물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자동인형으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 인간에게 선택의 자리를 주셨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도전합니다.
"너희는 오늘 섬길 자를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5). 신앙은 물려받는 유산이기 이전에, 매일 다시 선택해야 하는 결단입니다.

예수님도 마르다와 마리아의 이야기에서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누가복음 10:42)라고 하셨습니다. 좋은 편을 택하는 것, 그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제로 끌고 가시지 않습니다. 대신 매일 아침 우리 앞에 선택지를 두시고 기다리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기 쉬운 진실이 있습니다. "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의 선택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하루를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할지, 감사와 기도로 시작할지는 결국 내가 정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나를 지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결국 내가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선택입니다.

바울은 옥중에서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립보서 4:11). 바울의 상황은 그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 상황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그가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우리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은 통제할 수 없어도, 그 환경 앞에서 무엇을 선택할지는 언제나 우리 몫으로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선택 없이 타인의 결정에 끌려가다 생을 마감하는 것은 자연사가 아니라 사실상 타살에 가깝다는 말은 매섭지만 정직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이 말은 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예배가 되려면, 그것은 반드시 '
자원하는 선택'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억지로 끌려가는 제물이 아니라, 스스로 드리는 산 제사,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오늘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선택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원망으로 하루를 열 것인지, 감사로 열 것인지, 말씀 앞에 설 것인지, 스마트폰 앞에 먼저 설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사소해 보여도, 그 작은 선택들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이룹니다.

당신의 인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그 선물을 어떻게 살아낼지는 오늘도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떠밀려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원하여 드리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사르트르가 남긴 통찰을 뛰어넘어, 성경이 우리에게 촉구하는 참된 자유이자 책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