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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영혼이 따라올 시간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7. 11.

"그리하여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을 내가 돌이켜 보니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전도서 2:11)

아메리카 대평원, 인디언 전사들이 말을 타고 질주하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그들은 전속력으로 달리다가도 문득 고삐를 당기고 뒤를 돌아봅니다. 그러고는 한참을 멈춰 서서 지나온 길을 바라봅니다. 함께 달리던 동료가 이유를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합니다. "
내 영혼이 나를 따라오고 있는지 살피는 중이라네. 너무 빨리 달리면 몸은 앞서가도 영혼은 뒤처지고 마니까."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저 아름다운 전설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곱씹을수록 이것이 오늘 우리의 이야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 중년의 김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매일 새벽 5시 40분에 눈을 뜹니다. 정확히는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알람 소리에 몸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씻고, 넥타이를 매고, 지하철 계단을 두 칸씩 뛰어 내려가고, 스마트폰으로 밤새 온 메시지들을 확인하며 출근길 인파 속을 헤쳐 나갑니다. 회사에 도착하면 회의, 보고서, 전화, 또 회의, 점심은 15분 만에 해치우고, 오후에는 밀린 이메일과 씨름합니다. 퇴근길에도 머릿속엔 내일 처리할 일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 씻고 눕는 순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른 채 잠이 듭니다.

몇 달째 이런 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주일, 김 집사는 예배 중에 갑자기 눈물이 났습니다. 설교 말씀이 특별히 감동적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찬양을 부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
내가 지금 여기 앉아 있긴 한데… 정말 여기 있는 걸까?" 몸은 예배당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월요일 회의 자료와 밀린 집안일 사이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영혼이 오래전부터 자신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았습니다.

몸은 의지 하나로 어디든 데려갈 수 있습니다. 알람이 울리면 일어나고, 신호가 바뀌면 걷고, 상사가 지시하면 움직입니다. 몸은 순종적입니다. 그러나 영혼은 다릅니다. 영혼은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돌봄을 받아야만 따라오는 존재입니다. 마치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걷는 것과 같습니다. 어른의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으면 아이는 넘어지거나 뒤처집니다. 아이와 함께 걷고 싶다면, 어른이 걸음을 늦춰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대부분 어른의 보폭으로,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질주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성과, 속도, 효율이 미덕으로 청송받는 시대에, "
잠시 멈추어 뒤돌아보라"는 말은 낯설고 심지어 나약하게 들리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인디언 전사가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던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지혜였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몸만 목적지에 도착하고 영혼이 빠진 채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말입니다.

솔로몬은 해 아래서 부지런히 일하고, 많은 것을 이루고, 온갖 즐거움을 좇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것을 돌이켜 보았다. 보라,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았다." 그가 헛되다고 말한 것은 일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앞만 보고 달렸을 뿐,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고 있는지, 그 달음질 속에 자신의 영혼이 함께 있는지를 물은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
멈추라"고 말합니다. 안식일도, 광야의 만나도, 예수님이 반복해서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가셨던 습관도 모두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고 수많은 무리를 상대하신 후에도 반드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하셨습니다. 가장 바쁘셨던 분이, 가장 자주 멈추셨습니다.

김 집사는 그날 예배 후, 작은 결심을 했습니다. 매일 밤 자기 전 5분, 그날 하루를 조용히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입니다. 거창한 기도문이나 묵상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
오늘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렸는가. 그 달음질 속에 내 영혼은 함께 있었는가. 나는 오늘 하루, 살아 있었는가, 아니면 그저 흘러갔는가."

처음에는 그 5분이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사람과 다시 마주 앉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자 그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회의와 회의 사이 짧은 틈에도 문득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
지금 내 영혼이 나를 따라오고 있나?" 놀랍게도 그 짧은 물음 하나가 그의 하루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말을 타고 달리는 전사들입니다. 출근이라는 초원을 가로지르고, 성과라는 산등성이를 넘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고삐를 당기고 멈춰 서야 합니다. 뒤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영혼이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지, 혹시 저 멀리 뒤처져 흙먼지 속에 주저앉아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합니다.

온전한 인생이란 빨리 도착하는 인생이 아닙니다. 도착했을 때 몸과 영혼이 함께 그 자리에 서 있는 인생입니다. 지금 이 순간, 잠시 고삐를 당겨보십시오. 그리고 물어보십시오. 내 영혼은 지금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습니까? 잠시, 귀 기울여보십시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시편 2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