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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내려놓음, 그리고 그 안에 계신 분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7. 4.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태복음 11:28~30)

이 권사님은 평생을 분주하게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시장에서 삼십 년 넘게 옷 가게를 운영하며 손님을 상대하고,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의 사업 부도를 두 번이나 겪어내면서도 늘 머릿속에는 계산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저 며느리는 왜 저렇게 행동할까, 나는 다른 권사님들보다 헌금을 덜 하는 건 아닐까, 밤에 누워도 생각은 꼬리를 물었습니다. 은퇴 후 어느 날, 그녀는 요양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가는 길에 차 안에서 문득 이런 말을 했습니다. "
목사님, 저는 평생 마음이 시끄러웠어요. 늘 누군가를 재고, 비교하고, 판단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이 권사님과 비슷합니다. 끊임없이 타인을 평가하고, 자신을 남과 견주고, 지나간 일을 후회하며,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합니다. 그렇게 생각이 생각을 낳고, 판단이 판단을 낳으면서 마음은 점점 무거운 짐을 지게 됩니다. 이런 분주한 마음의 상태를 벗어나 고요함과 평안에 이르고 싶은 갈망은 사실 모든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갈망입니다.

세상은 이 갈망에 대해 "
생각을 비우라"고 답합니다. 판단하지 말고, 분별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자연과 하나가 되고, 우주와 합일하고, 마음을 텅 비우면 평화가 온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는 분명 진실의 조각이 담겨 있습니다. 끝없는 자기중심적 분별과 비교, 정죄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평안의 길은 마음을 "
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누구에게 두느냐"의 문제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시편 46:10). 여기서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은 생각을 소멸시켜 무(無)의 상태에 이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분주한 손을 멈추고, 스스로 세상을 통제하려는 몸부림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예수님도 마태복음 11장에서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은 자아를 지워버리는 데서 오지 않습니다. 안식은 나를 대신 짊어져 주실 분,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데서 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권면한 뒤, "그리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약속합니다(빌립보서 4:6~7). 생각을 없애서 평강을 얻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기도로 하나님께 올려드릴 때 평강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권사님이 배운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권했습니다. "
권사님, 마음을 비우려고 애쓰지 마세요. 대신 그 시끄러운 생각 하나하나를 하나님께 올려드려 보세요. 저 며느리 때문에 속상한 마음이 들 때, 그 생각을 없애려 하지 말고 '주님, 제가 며느리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 마음을 주께 맡깁니다'라고 기도해 보세요." 몇 달 후 권사님은 고백했습니다. "생각이 사라진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생각이 저를 삼키지 않아요. 주님께 올려드리고 나면 마음이 가벼워져요."

여기에 세상의 "
무심"과 성경적 안식의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은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생각과 자아 그 자체를 지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참된 자아가 텅 빈 무(無)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어질 때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참된 나는 우주와 하나가 됨으로써가 아니라, 나를 지으시고 나를 위해 죽으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써 발견됩니다.

또한 세상의 가르침은 자연을 바라보며 산이 되고 강이 되고 하늘이 되는 신비로운 합일을 말하지만, 성경은 피조물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대신 시편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때마다 그것을 만드신 창조주를 찬양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편 19:1). 노을을 보고, 강물을 보고, 새소리를 들을 때 우리가 그 풍경 자체와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풍경을 지으신 손길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필요한 것은 "
무심"이 아니라 "맡김"입니다. 판단과 분별과 염려로 가득한 생각을 없애려 애쓰는 대신, 그 생각들을 하나씩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설거지를 할 때, 길을 걸을 때,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 이 생각을 아룁니다. 주께서 다스려 주소서"라고 아뢰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묵상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주와 합일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 안에 거하기로 하신 하나님과 교제하게 됩니다. 이 권사님이 시장통에서 삼십 년을 살아내며 배운 참된 평안은, 생각을 비우는 데 있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시끄러운 생각을 매일 주님 앞에 내려놓는 삶, 그것이 진짜 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