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 8:10)
요즘 많은 이들이 '파동', '기운',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언어로 행복을 설명합니다. 좋은 생각을 품으면 좋은 에너지가 발생하고, 그 에너지가 좋은 일들을 끌어당긴다는 것입니다. 언뜻 들으면 그럴듯합니다. 밝은 표정, 긍정적인 태도, 자기 존중, 이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아주 중요한 전제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행복은 오직 나의 힘으로, 나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전제입니다. 오늘 이 전제를 성경의 빛 아래 놓고 다시 살펴보려 합니다.
'파동을 자가발전한다'는 표현은 인간을 마치 스스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발전기처럼 그립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스스로 충전하고, 약해지면 스스로 끌어올리는 존재로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인간은 발전기가 아니라 그릇입니다. 예레미야 18장의 토기장이 비유처럼, 우리는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담아 흘려보내는 존재로 지음 받았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 질그릇은 스스로 빛나지 않습니다. 안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빛나기도 하고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질문은 "내가 어떻게 스스로 강한 파동을 만들어낼까"가 아니라 "내 안에 무엇이, 누가 채워져 있는가"가 되어야 합니다.
느헤미야 8장에는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옵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학사 에스라가 낭독하는 율법의 말씀을 듣다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통곡합니다. 그때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뜻밖의 말을 전합니다. "슬퍼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헤미야 8:10). 여기서 힘의 근원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힘은 백성들 자신의 밝은 생각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에서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 기쁨은 자기 안에서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볼 때 그분으로부터 흘러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파동 이론이 "나를 들여다보라"고 말한다면, 성경은 "그분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한 마을에 두 정원사가 있었습니다. 첫 번째 정원사는 매일 아침 정원에 나가 "나는 이 정원을 스스로 아름답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온 힘을 다해 꽃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으려 했습니다. 말을 걸고, 긍정의 에너지를 보내고, 자신의 의지로 시들지 않게 하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가뭄이 오자 그의 정원은 속절없이 말라갔습니다. 아무리 좋은 마음을 품어도 물이 없으면 꽃은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정원사는 달랐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수원지로 가서 물길을 정원까지 끌어왔습니다. 자신이 꽃을 살리는 힘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물이 끊이지 않고 흘러오도록 물길을 살피고, 막힌 곳을 뚫는 것이 그의 몫이었습니다. 가뭄이 와도 그의 정원은 푸르렀습니다. 힘의 근원이 자기 안이 아니라 수원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습니다. 파동 이론은 우리에게 첫 번째 정원사가 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복음 15:5). 우리는 가지입니다.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나무에 붙어 있을 때, 그 수액이 흘러들어올 때 열매가 맺힙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정원사가 물길을 살피는 수고를 하듯, 우리에게도 분명한 몫이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고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은 성령의 열매로서 "사랑과 희락과 화평..."을 말합니다. 여기서 기쁨(희락)은 우리가 억지로 짜내는 감정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열매입니다.
또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은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이는 감정을 억지로 조작하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고정할 것인지를 매일 선택하라는 초청입니다. 감사의 시선으로 하루를 살피고, 말씀 앞에 마음을 여는 것이 우리의 물길을 살피는 수고입니다. 그러나 그 물 자체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파동 이론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 하나로 우주의 법칙을 활용할 수 있는 커다란 특권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특권은 이보다 훨씬 크고 견고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파동을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된 존재입니다(요한1서 3:1). 우리의 기쁨은 상황에 따라 흔들리는 자가발전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요한1서 4:4)을 아는 데서 오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스스로 밝은 생각을 쥐어짜며 자신을 다그치기보다, 조용히 무릎 꿇어 그 근원 되신 분을 바라보십시오. 물이 흘러오는 수원지를 향해 물길을 여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에 결코 마르지 않는 기쁨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받은 것으로서, 넘쳐흐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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