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부부에게 다섯 살 난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남들과 조금 달랐습니다. 정신지체를 안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부부는 밤마다 눈물로 베개를 적셨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그런 생각이 수없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하지만 부부는 아이를 시설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직접 키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주일에는 손을 꼭 잡고 함께 예배를 드렸고, 평일에는 특수 학교에 데려다주며 하루하루를 채웠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아이는 여전히 웃기만 했습니다.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습니다. 부모는 그 웃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스무 해가, 또 아홉 해가 지났습니다. 아이는 어느덧 건장한 청년이 되어 있었습니다.
청년은 장애인 작업장에서 전자부품을 조립하는 단순한 일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캐럴이라는 새 책임자가 그곳에 왔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청년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를 읽어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숨겨진 세계가 있다." 그녀는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캐럴은 청년에게 컴퓨터 자판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조차 힘겨운 훈련이었습니다. 몇 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더디고 힘겨운 훈련 속에서, 청년이 얼마나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해왔는지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마침내 캐럴은 청년의 부모를 작업장으로 불렀습니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 그날, 캐럴이 먼저 자판으로 물었습니다. "오늘 기분이 어때요?" 청년의 손가락이 아주 천천히,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모니터 위로 글자가 하나씩, 하나씩 떠올랐습니다. 부모는 숨죽인 채 그 화면을 지켜보았습니다. 긴 시간이 지나서야 마침내 한 문장이 완성되었습니다.
"이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 행복합니다." 스물아홉 해의 침묵이 그 한 문장으로 깨졌습니다. 부모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우리는 감히 짐작만 할 뿐입니다. 스물아홉 해 동안 마음속에 품고도 꺼내지 못했던 그 말,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가, 마침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부부 여러분, 우리는 이렇게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정작 그 사랑을 표현하는 데는 서툽니다. 아니, 서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입을 닫고 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오히려 서운함과 미움이 마음의 방 한 칸을 차지하고 눌러앉아 있을 때가 더 많지 않습니까?
여기 또 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고려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이후로도 국문학과 불문학을 넘나들며 배움을 이어간 사람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일곱 개의 학위를 받을 만큼 성실했고, 첫 직장이자 마지막 직장이 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던 그의 삶의 철학은 '이웃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1999년 초, 이상한 증상이 찾아왔습니다. 이유 없이 코가 막히고 목이 답답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감기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병원을 옮기고 옮긴 끝에 받은 진단은 근위축성측색경화증, 흔히 루게릭병이라 불리는 병이었습니다.
이 병은 잔인합니다. 몸의 운동세포를 하나씩 굳혀갑니다. 말을 빼앗고, 체중을 빼앗고, 결국엔 숨 쉬는 힘마저 빼앗아 갑니다. 그런데 정신만은 끝까지 또렷합니다. 그 또렷함이 오히려 본인과 가족을 더 아프게 합니다. 172cm였던 키는 오그라들었고, 몸무게는 40kg 남짓으로 줄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눈 주변뿐이었습니다.
술 한 잔 가까이하지 않고 바르게만 살아온 그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선고가 내려졌을 때, 온 집안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도 처음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왜 하필 나에게, 라는 질문을 수없이 던졌을 것입니다. 음식은 갈아서 먹어야 했습니다. 씹을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침이 흘러내리면 누군가 곁에서 닦아주어야 했습니다. 한쪽으로만 누워 지내야 하는 몸은 늘 아팠고, 침대에서 미끄러지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수천 번을 말해도 아깝지 않은 내 아내에게, 어쩌다가 나는 사랑한다는 말 한 번 제대로 못하는 멋없는 남편으로 살아왔을까!" 건강했던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는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아꼈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쑥스럽다는 이유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미뤄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몸이 굳어가는 자리에서야, 그 사랑을 시로 풀어냈습니다. "살아서든 죽어서든 당신만을 지켜주고 싶다." 그가 꿈꾸는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번 지하철을 타보는 것. 그것이 그가 바라는 전부였습니다.
두 이야기 속 주인공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사랑을 품고 있었지만, 그 사랑을 말로 꺼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였고, 한 사람은 자존심과 습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두 사람 모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서야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신혼의 설렘 속에 있는 부부든, 아이를 키우며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부부든, 우리에게는 언제나 "오늘 말하지 않아도 내일이 있다"는 착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스물아홉 해를 기다려야 했던 그 청년처럼, 또 몸이 굳어가는 자리에서야 시로 고백해야 했던 그 남편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무한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사랑이 언어로,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함을 거듭 가르칩니다. 마음속에 품은 사랑은, 표현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닿지 않습니다. 배우자는 우리의 마음을 읽는 초능력자가 아닙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리 자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오늘 밤, 잠들기 전에 배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사랑합니다."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미움과 서운함이 마음의 방에 둥지를 틀지 못하게 하십시오. 사랑의 말만이 그 방을 채울 수 있도록,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죽어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오늘, 사랑을 마음껏 표현하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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