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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행복한 동행 - 곁에 있다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14.

1934년 5월 28일,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마을 코르베빌에서 세상을 놀라게 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다섯 쌍둥이 자매가 한꺼번에 태어난 것입니다. 의학사에 남을 기적 같은 생존이었습니다. 그러나 축복이어야 할 이 사건은 곧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농부였던 디온 부부는 다섯 아이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되었습니다. 정부와 의학자들은 아이들을 부모와 다섯 명의 형제자매로부터 떼어내 별도의 시설에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
더 나은 양육 환경"이었지만, 실상은 학계의 연구 대상이자 관광 상품이었습니다.

'퀸튜플랜드'라 불린 이 시설에는 매년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몰려들어 유리창 너머로 아이들을 구경했습니다. 아이들은 최고의 영양과 의료 혜택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들에게 없었던 것은 단 하나, 가족과 함께 보내는 평범한 시간이었습니다.

세월이 흐른 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다섯 자매 중 둘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결혼한 이들도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홀로 남은 자매는 몬트리올 근교의 외딴집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다섯 명 모두 친부모, 친형제와 끝내 정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을 다 갖췄지만, 정작 '함께 있는 시간'을 빼앗긴 아이들의 마음에는 평생 메울 수 없는 구멍이 남은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가족에게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좋은 집, 좋은 학원, 좋은 옷을 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함께 있음'을 빼앗고 있지는 않습니까?

미국 컬럼비아 바이블 칼리지의 학장이었던 로버트슨 맥퀼킨 박사에게도 인생을 뒤흔드는 사건이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뮤리엘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소한 건망증이었습니다. 그러나 병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그녀의 기억을 갉아먹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뮤리엘은 남편이 곁에 없으면 극심한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남편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면 안절부절못했고, 어떤 날은 남편을 찾아 무작정 집 밖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학교 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아내가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된 적도 있었습니다. 맥퀼킨은 갈림길에 섰습니다. 존경받는 학장 자리를 계속 지킬 것인가, 아니면 아내 곁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는 망설임 없이 사임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전교생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이제 나는 아내의 곁으로 돌아갑니다. 42년 전 결혼서약을 할 때,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아내를 돌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나는 그 서약을 지키고 싶습니다. 아내가 40년 동안 나를 돌봐주었기에 이제 그 사랑의 빚을 갚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를 향한 사랑과 기쁨 때문에, 나는 그녀의 곁으로 갑니다." 사람들은 그가 학장으로 있을 때보다 그 자리를 내려놓았을 때 그를 더 존경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신실함이, 성취가 아니라 곁을 지키는 사랑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은 디온 자매처럼 강제로 떨어져 사는 것도 아니고, 맥퀼킨 박사처럼 극한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같은 집, 같은 밥상, 같은 침대에서 배우자와 함께 삽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외로울까요?

저녁 시간, 거실 풍경을 떠올려보십시오. 아내는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고, 남편은 소파 한쪽에서 휴대폰 화면을 넘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각자 방에서 책상에 앉아 공부합니다. 한 공간에 몸은 모여 있지만, 마음은 저마다 다른 세계를 향해 있습니다. 대화는 없고, 눈빛도 마주치지 않습니다. "
우리 가족은 함께 살고 있으니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사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디온 자매들의 유리벽입니다. 물리적 거리는 없어도 마음의 거리는 그만큼이나 멀 수 있습니다.

여기 소박하지만 진짜였던 하루가 있습니다. 신년 특별 새벽기도회가 시작된 어느 월요일, 연말연시 사역으로 지칠 대로 지친 한 목회자는 그날만큼은 집에서 푹 쉬기로 했습니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려던 참이었습니다.
"뭘 해 먹을까?" "아무 거나 해 먹어." 부부 사이에 흔히 오가는, 특별할 것 없는 대화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그 '아무 거나'를 위해 정성을 들였습니다. 봄동 부침개, 상추 부침개, 깻잎 부침개까지 세 가지를 부쳐냈습니다. 거기에 매실장아찌와 멸치젓을 곁들였습니다. 화려한 상차림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째 저혈압으로 입맛을 잃고 무기력했던 이 사람은, 그 소박한 밥상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말했습니다.
"정말 맛있다. 아~ 행복해." 거창한 이벤트도, 값비싼 외식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내가 부쳐준 부침개 세 장이었을 뿐인데, 그 안에 담긴 것은 '나를 위해 시간을 들인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행복은 종종 이렇게 작고 평범한 순간에 숨어 있다가, 지쳐 있을 때 문득 우리를 찾아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함께 있는 시간을 원합니다. 시간을 내주지 않는 것은 아무리 다른 말로 포장해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랑은 결국 시간입니다. 디온 자매의 비극도, 맥퀼킨 박사의 결단도, 부침개 세 장의 행복도 모두 같은 진실을 가리킵니다.

많은 부부가 나이 들어 배우자와 더 이상 함께 다닐 수 없게 되었을 때, 그제야 후회합니다. "
왜 그때 더 많이 함께 있어주지 못했을까." 하지만 후회는 깨달은 그 순간부터 멈출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다면, 짧은 시간이라도 온전히 함께하면 됩니다. 양보다 질입니다. 텔레비전을 끄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배우자의 눈을 바라보는 십 분이, 한 공간에서 각자 다른 곳을 보며 보내는 세 시간보다 낫습니다. 함께 웃고 함께 먹고 함께 울었던 시간들은 훗날 추억의 박물관에 걸릴 소중한 작품이 됩니다.

오늘, 당신의 곁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
뭘 해 먹을까?" 그리고 그 평범한 물음 속에서, 함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선물인지 다시 발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