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이란 참 이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 앞에서 가장 날카로운 말을 쏟아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밖에서 만난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않을 말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서슴없이 내뱉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라는 안일함, 혹은 "가족이니까 괜찮다"는 착각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어느 아파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젊은 아내가 아침에 남편을 출근시키고 아이를 유치원에 보냈습니다. 오후가 되어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와 벨을 눌렀지만, 아무리 눌러도 안에서는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계속 문을 두드렸고, 결국 경비원까지 올라와 문을 두드렸지만 역시 반응이 없었습니다. 다행히 아이가 아빠의 전화번호를 외우고 있어서 연락이 닿았고, 남편이 급히 달려와 열쇠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발견한 것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며칠 전 있었던 부부싸움의 후유증이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다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결과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화가 난 남편은 아내가 원망스러워 이틀 만에 급히 장례를 치르고, 아내가 쓰던 물건까지 모두 없애버렸다고 합니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인 그 마음을, 우리는 감히 짐작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중년 부부들이 함께 야유회를 간 날이었습니다. 물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점심시간이 되어 다들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정의 아내만 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뒤늦게 아내가 도착하자, 남편은 모든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이런 여편네를 마누라라고 데리고 사는 내가 한심한 놈이다!"
아내가 왜 늦었는지,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물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자존심이 상한 그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쏟아냈을 뿐입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아내는 아무 말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이 두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무거워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는 "설마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하고 싶겠지만, 실은 우리 각자의 마음속에도 저런 순간이 씨앗처럼 심겨 있습니다. 배우자를 향해 던진 날카로운 한마디, 무시하는 눈빛, 자존심을 짓밟는 언사, 그것이 상대방의 마음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우리는 늘 다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화가 나는 것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정이 있습니다. 서운함도, 분노도, 억울함도 인간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문제는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에베소서 4:26). 이 말씀이 흥미로운 것은, 화를 내지 말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화가 나는 것은 인정하되, 그 감정이 죄로 변질되지 않도록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즉 감정 자체가 아니라, 그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 신앙의 성숙도를 드러냅니다.
젊은 부부일수록 이 훈련이 절실합니다. 결혼 초기에는 서로에 대한 기대가 크고, 그만큼 실망도 크게 느껴집니다. "이 사람은 나를 이해해줄 거야"라는 기대가 무너질 때, 우리는 쉽게 감정을 폭발시킵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감정을 배출하는 무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워가는 훈련장입니다.
이 글의 마지막 장면은 앞의 두 이야기와 결이 다릅니다. 어느 교회의 50대 후반 집사님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이 부부는 신앙 안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에게 말기암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부부는 함께 기도하며 치료에 최선을 다했지만, 남편의 정성스러운 간호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몇 달 동안 사람들도 만나지 않고 집 안에 틀어박혀 지냈습니다. 보다 못한 친구들이 그를 야외로 데리고 나갔습니다. 함께 산을 오르며, 한 친구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습니다. "박 집사, 이제 잊을 것은 잊어야 하지 않겠나. 안된 말이지만, 천국에 갔으니 차라리 두 사람 모두를 위해 더 잘된 일 아니겠나?" 그 말을 들은 남편은 한참을 침묵하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입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나는 다른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어. 그저 아내가 내 곁에 있어서 체취만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행복하겠어. 의식이 없어 숨을 못 쉰다 해도, 내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겠어."
이 고백 앞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깨닫게 됩니다. 사람은 배우자를 완전히 잃고 나서야, 그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였는지를 깨닫습니다. 살아 숨 쉬며 곁에 있어주는 것, 그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결국 하나의 진실이 드러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유한하다는 것, 그리고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배우자와 함께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것입니다. "미워할 시간이 없다"는 말은 감상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는 배우자와 언젠가 헤어져야 할 날을 향해 하루하루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사소한 다툼 속에서 던지는 날카로운 말 한마디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성내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는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율법적 명령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그렇게 참으시고 용납하셨기에, 우리도 그 사랑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복음의 초청입니다. 우리가 배우자를 참아주고 용서할 수 있는 힘은, 결국 우리를 먼저 참아주시고 용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젊은 부부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오늘 배우자에게 하고 싶었던 날카로운 말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보십시오. 그 말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그저 순간의 감정을 배출하고 싶은 충동인지를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오늘 내 곁에서 숨 쉬고 있는 그 사람이, 언젠가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무치게 그리워질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할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로 오늘, 우리에게는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행복한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행복한 동행 -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의 역설적 지혜 (0) | 2026.08.18 |
|---|---|
| 행복한 동행 - 곁에 있다는 것 (0) | 2026.08.14 |
| 사랑한다는 말, 오늘 하셨습니까? (0) | 2026.08.14 |
| 행복한 동행 - 흠을 덮어주는 사랑 (0) | 2026.08.13 |
| 행복한 동행 - 환상이 현실이 되게 하라 (0) | 2026.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