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북쪽 지방에 한 게으른 남자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그의 귀에 솔깃한 소문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제주도 여자들은 남편을 집에서 놀게 하고, 자기가 나가 일해서 남편을 먹여 살린다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그의 마음속엔 한 가지 꿈이 자리 잡았습니다. '나도 제주도 여자와 결혼해야겠다.' 그리고 정말로 인연이 닿아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결혼한 지 며칠이 지나도 아내는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신혼이라 그런가 보다, 한 달쯤 지나면 달라지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두 달이 지나도 아내는 여전히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참다못한 남편이 물었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제주도 여자들은 남편을 놀게 하고 자기가 일해서 먹여 살린다던데, 당신은 어째서 부엌 근처에도 안 가는 거요?" 아내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밭을 팔아 논을 살 때는 이 쌀밥 한번 먹어보자고 사는 것 아니겠소? 나도 제주도에서 뭍으로 시집올 때는 놀고먹으려고 왔지, 그렇지 않으면 뭐 하러 왔겠소?"
이 옛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웃음이 나면서도, 왠지 뜨끔합니다. 우리도 결혼할 때 저마다의 '소문'을 하나씩 품고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저 사람과 결혼하면 나는 더 사랑받을 거야." "저 사람이라면 내 외로움을 다 채워줄 거야." 그런데 살아보니, 상대방도 나름의 기대를 안고 왔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편하게 해주길 기대했고, 아내는 결혼이 자신을 쉬게 해줄 거라 기대했습니다. 두 기대는 처음부터 어긋나 있었지만, 서로 확인하지 않은 채 결혼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간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마을에 신기한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이 가게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의 남자를 골라 함께 살 수 있었습니다. 건물은 5층으로 되어 있었고, 규칙은 단순하지만 엄격했습니다. 한번 어느 층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 층에서 반드시 선택해야 하고, 다시 아래층으로도 위층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두 여인이 설레는 마음으로 이 가게에 들어섰습니다. 1층 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직업이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있습니다." 나쁘지 않았지만, 왠지 아쉬웠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 보자." 2층으로 향했습니다. "이곳에는 돈을 잘 벌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잘생긴 남자들이 있습니다."
마음이 흔들렸지만, 또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도 위층엔 더 좋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3층, 4층을 오를 때마다 조건은 점점 더 완벽해졌습니다. 돈 잘 벌고, 잘생기고, 집안일도 잘 돕고, 로맨틱하기까지 한 남자들입니다. 두 여인은 손뼉을 마주치며 기뻐했습니다. "여기가 이 정도라면, 5층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5층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엔 이런 안내문만 붙어 있었습니다. "5층은 비어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출구는 왼편 계단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는 씁쓸하게 웃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많은 부부의 마음속 풍경 아닐까요? 결혼한 뒤에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계속 위층을 올려다봅니다. '이 사람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해 줄 사람이 있지 않을까.' '내가 조금만 더 기다렸다면 더 나은 사람을 만났을지도 몰라.' 그렇게 지금 내 곁에 있는 배우자를 3층, 4층에 있던 사람과 비교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5층을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인생에 5층은 없습니다. 완벽한 배우자, 나의 모든 필요와 결핍을 남김없이 채워줄 사람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평생 손에 쥔 4층을 원망하며 살게 됩니다.
배우자에게 기대를 갖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대가 전혀 없다면 그것은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식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기대의 '크기'가 아니라 기대의 '방향'입니다. 배우자를 통해 나의 모든 결핍과 외로움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다 채우려 할 때, 그 기대는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신이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다른 관점을 보여줍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조건이나 자격과 상관없이 부어진 사랑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족시켜서가 아니라, 우리가 여전히 부족하고 연약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먼저 받은 사람만이, 배우자에게 "당신이 나를 완전히 만족시켜야 해"라고 요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진짜 갈증은 배우자가 아니라 하나님만이 채우실 수 있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두 여인이 5층 문 앞에서 후회했던 이유는 단 하나, 4층에서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4층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 사람이면 충분하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 이야기는 후회가 아니라 행복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젊은 부부들에게 이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지금 내 곁에 있는 배우자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나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한 지나친 기대를 내려놓고,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며 감사할 때, 비로소 진짜 동행이 시작됩니다. 배우자에게 걸었던 과도한 기대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대신 그 자리에 서로를 향한 인내와 이해를 채워가는 것, 그것이 결혼이라는 여정을 끝까지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완벽한 5층을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지금 내 곁에 있는 4층, 그 사람의 손을 붙잡고 감사하는 것에서 진짜 행복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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