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은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사건이라고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살아보면 그 말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혼 전까지 우리는 철저히 "나"를 중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자고 싶을 때 자고,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루를 채워왔습니다. 그런데 결혼은 그 익숙한 습관에 제동을 겁니다. 이제는 "나"만이 아니라 "우리"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많은 부부가 부딪힙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즐거움에 충실합니다. 그 즐거움이 깨지면 화가 납니다. 사랑하는 배우자라 할지라도, 나의 만족을 빼앗아 간다고 느껴지면 순간 서운함이 밀려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행복한 동행을 만들어가는 부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자신의 즐거움이 아니라 상대방의 즐거움을 먼저 헤아릴 줄 압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그 즐거움을 기꺼이 내려놓을 줄 압니다.
어느 월요일 저녁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아내는 독서치료 수업을 듣고 오는 길에 빵을 사왔고,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갓 사온 빵 봉지를 열자 다들 자연스럽게 가장 맛있어 보이는 빵부터 골라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맛있는 빵을 우리끼리 다 먹어버리면 안 되지. 아직 안 온 혜린이랑 세린이 것도 남겨놔야지." 그러자 아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습니다. "뭐, 빵 같은 걸 갖고 그래요." "아니야. 콩 한 조각도 나누어 먹는 게 가족인데." "큰 것도 아니고, 먹고 싶으면 얼마든지 또 사 먹을 수 있잖아요."
이 짧은 대화 속에는 두 가지 다른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아들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빵 하나쯤 못 나눠 먹었다고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가족이라는 공동체, 그리고 부부라는 공동체는 그 "큰일도 아닌" 작은 것들을 통해 사랑을 배웁니다. 결국 그날 저녁, 남은 빵을 흔적 없이 잘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조금 뒤 딸 혜린이가 돌아와 빵 봉지를 보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거 왜 사왔어?" "엄마가 널 생각해서 사온 거지." "에이, 아닌 거 같은데." "진짜야. 정말 너 때문에 남겨둔 거야." "근데 왜 이것밖에 안 남았어? 맛있는 건 하나도 없네." 결국 그동안의 실랑이를 다 털어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 가족이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는 작은 진리 하나가 남았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내가 먼저"라는 태도를 조금씩 내려놓는 자리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사소한 일에서도 서운함과 상처가 쌓이고 맙니다.
또 다른 월요일, 이번에는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날이었습니다. 목양실로 가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전날 설교에 큰 은혜를 받았다며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는 어느 성도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연세 드신 분의 정성을 거절할 수 없어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아내가 말했습니다. "나는 마트에 다녀올 테니, 당신은 당신 할 일 해요."
배려해 주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마음에 걸렸습니다. "에이, 그럴 수야 있나. 마트 가면 짐도 많을 텐데. 같이 가자, 내가 들어줄게." 결국 함께 장을 보고, 짐을 나르고, 집에 돌아와 잠깐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나니 어느새 저녁이었습니다. 애초에 계획했던 그 "할 일"은 결국 손도 대지 못한 채 하루가 저물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설교 준비로 그날 일과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후회가 남지 않았습니다. 내가 하려던 일은 못 했지만, 아내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었던 그 하루가 오히려 더 값지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몫을 다 챙기면서 동시에 행복한 동행을 누릴 수는 없습니다. 배우자의 기쁨을 위해 나의 계획, 나의 편함, 나의 "달콤함"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신혼의 시기를 지나는 부부라면 이런 순간이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퇴근 후 몸은 지쳐 쉬고 싶은데, 배우자는 오늘 있었던 일을 나누고 싶어 합니다. 주말에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배우자는 함께 나들이를 가자고 합니다. 이런 순간마다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나의 즐거움을 지킬 것입니까, 아니면 상대의 즐거움을 위해 나의 것을 내려놓을 것입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내려놓음이 억지로 참는 인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상대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자발적인 선택이어야 합니다. 짜증이 날 때 짜증을 내는 것은 인간적으로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짜증이 배우자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되는지를 헤아려 본다면, 우리는 그 감정마저도 조절하고 내려놓아야 할 이유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은 부부의 연합을 단순히 감정의 일치가 아니라, 서로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는 삶으로 그립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되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엡 5:25), 부부의 사랑도 결국 자기 포기와 자기희생의 자리에서 완성됩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배우자에게 양보할 수 있습니까? 내가 누리고 싶은 편안함을 배우자를 위해 내려놓을 용기가 있습니까? 이것이 결혼이라는 여정 속에서 우리가 날마다 마주하는 작지만 결정적인 질문입니다.
행복한 동행은 거창한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빵 한 조각을 남겨두는 것, 무거운 장바구니를 함께 드는 것, 화가 날 때 한 번 더 참는 것, 이 작은 반납들이 쌓여서 결국 두 사람만의 깊고 단단한 사랑을 만들어갑니다.
'행복한 동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행복한 동행 - 국그릇 하나에 담긴 결혼의 비밀 (0) | 2026.08.22 |
|---|---|
| 행복한 동행 - 다 채워지지 않아도 괜찮은 사랑 (0) | 2026.08.21 |
| 행복한 동행 - 나를 먼저 다스리는 사랑, 신혼의 착각 (0) | 2026.08.19 |
| 행복한 동행 - 오늘 사랑할 수 있는 이 순간, 화 그 짧은 순간이 남기는 것 (0) | 2026.08.19 |
| 행복한 동행 -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의 역설적 지혜 (0) | 2026.08.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