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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동행

행복한 동행 - 국그릇 하나에 담긴 결혼의 비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22.

대학로 골목, 다섯 평 남짓한 작은 분식집이 있었습니다. 떡볶이와 어묵으로 유명한 그곳은 늘 손님으로 북적였고, 주인아주머니는 누가 오든 상관하지 않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가게를 지휘했습니다. "여기 앉아요. 빨리 주문하세요." 교수든 학생이든, 지갑이 두둑하든 얇든, 그 가게 안에서는 아주머니가 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무뚝뚝함이 오히려 정겨워서 자꾸 그 집을 찾았습니다.

어느 날, 한 여교수가 남편과 함께 그 집을 찾았습니다. 평소 자랑하던 어묵 국물을 남편에게 맛보여 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아주머니는 큰 국그릇 하나를 부부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남편은 자연스럽게 그 그릇을 아내 쪽으로 밀어주었습니다. 아내가 국물을 몇 숟갈 떠먹기 시작했을 때, 아주머니가 작은 그릇 하나를 서비스로 더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주머니는 아무 망설임 없이 이미 아내가 먹고 있던 큰 그릇을 남편 앞으로 옮기고, 작은 그릇을 아내 앞에 놓았습니다. 너무나 확신에 찬 손길이었습니다. "
큰 그릇은 남자 몫, 작은 그릇은 여자 몫"이라는 무언의 공식이 아주머니의 머릿속에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장면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갈래로 갈릴 것입니다. "
정겹네, 뭐 어때" 하고 웃어넘기는 사람과, "먹던 그릇을 왜 함부로 바꿔요?" 하며 불쾌해하는 사람, 그런데 이 작은 국그릇 사건이 재미있는 건, 우리 부부 안에서도 매일 이와 비슷한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혼을 앞둔 어느 청년에게 선배가 진지하게 조언했습니다. "
신혼 초에 기선을 제압해야 해. 안 그러면 평생 끌려다녀." 그 말을 듣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보려 했던 부부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러나 그 끝은 대개 비참했습니다. 주도권을 잡으려던 사람은 배우자를 정복해야 할 상대로 여기게 되고, 잡히지 않으려는 사람은 방어 태세로 결혼생활 내내 날을 세우게 됩니다.

옛날 한국 남성들의 마음속엔 "
남편은 하늘, 아내는 땅"이라는 무의식적인 서열 의식이 있었습니다. 아내 위에 군림하고, 아내가 자기 뜻대로 움직여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러나 시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성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습니다. 더 이상 "예, 예" 하며 조용히 순종만 하고 살려는 아내는 드뭅니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부당한 대우엔 맞서려 합니다. 어찌 보면 당연하고 건강한 변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변화가 종종 또 다른 형태의 주도권 싸움으로 번진다는 데 있습니다. 예전엔 남편이 힘으로 눌렀다면, 이제는 부부 서로가 목소리로, 논리로, 감정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합니다. 몇 해 전 한 국제선 항공기에서 벌어진 일이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술에 취한 한 승객이 남편과 말다툼을 벌이다 접시와 컵을 집어던지고, 이를 말리던 여승무원의 앞치마를 찢고, 무릎을 꿇고 진정시키려던 승무원의 배를 걷어차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부부 사이의 감정싸움이 아무 죄 없는 제삼자에게까지 상처를 남긴 것입니다.

술이 문제였을까요, 평소 쌓인 감정이 문제였을까요, 아니면 "
이제는 나도 지지 않는다"는 시대정신이 문제였을까요? 이유가 무엇이든 분명한 건, 주도권을 잡으려는 싸움은 승자도 패자도 결국 부끄러운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식집에서 아주머니가 그릇을 바꾼 것은 어쩌면 낡은 관습의 반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 자리에서 정말 아름다웠던 장면은 따로 있었습니다. 국그릇이 나왔을 때, 남편이 그것을 먼저 자기 앞으로 당기지 않고 아내에게 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누가 보고 있지도 않은데, 그는 자연스럽게 좋은 것을 아내에게 내주었습니다. 그 손길 하나가 결혼의 본질을 말해줍니다. 좋은 결혼은 누가 큰 그릇을 차지하느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누가 먼저 그릇을 상대에게 내미느냐로 결정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랍비가 제자의 발을 씻기는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서열로 따지면 예수님이 가장 큰 그릇을 받으셔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가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한복음 13:14). 부부에게 이보다 더 정확한 결혼 지침서는 없습니다. 누가 하늘이고 누가 땅인지를 따지는 순간, 그 가정은 이미 예수님의 정신에서 멀어집니다.

어느 목회자 부부의 이야기입니다. 결혼 초, 아내는 사소한 집안일 결정 하나하나에서 남편과 부딪혔습니다. 리모컨을 누가 잡을지, 저녁 메뉴를 누가 정할지, 심지어 이불을 어느 방향으로 개는지까지, 매번 "
내 방식이 맞다"고 우기다 보니 집안 공기는 늘 팽팽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
내가 이겨서 얻는 게 뭐지? 리모컨을 쥔들, 결국 남는 건 차가워진 남편의 얼굴뿐이잖아." 그날 이후 그녀는 사소한 것들에서 먼저 양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남편 역시 큰일에서 그녀의 의견을 더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힘으로 뺏은 주도권은 방어를 부르지만, 사랑으로 내어준 자리는 신뢰를 부릅니다.

"
지는 게 이기는 것"이라는 옛말은 결혼생활에서 결코 패배주의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지혜로운 전략입니다. 작은 국그릇을 기꺼이 받아드는 사람, 큰 그릇을 상대에게 먼저 내미는 사람, 그 사람이 결국 그 가정의 진짜 주인이 됩니다. 힘으로 잡은 주도권은 언젠가 반드시 도전받지만, 사랑으로 내어준 자리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충전소입니다. 밖에서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힘겨루기를 치릅니다. 회의실에서, 거래처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승진 경쟁 속에서 우리는 이미 충분히 지치도록 싸웁니다. 그런데 그 전쟁을 집 문턱까지 끌고 들어와 배우자와 또 한 판을 벌인다면, 우리에게 남는 충전소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젊은 부부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오늘 저녁, 국그릇 하나를 밀어 보십시오. 리모컨을, 마지막 남은 반찬 한 조각을, 오늘의 결정권을 먼저 상대에게 내밀어 보십시오. 손해 보는 것 같아도 그 작은 양보가 쌓여 만드는 것은 평생 무너지지 않는 신뢰입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서로를 섬기는 부부에게는 애초에 주도권 싸움이라는 것이 존재할 자리가 없습니다. 누가 위에 서느냐를 다투기엔, 서로에게 발을 씻어줄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요한복음 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