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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속으로

산상수훈, 무너진 산 위에 선 은혜의 산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22.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태복음 5:3~12)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산상수훈, 그건 우리가 지켜야 할 삶의 규범이지.” 그리고는 산상수훈을 가리켜, 기독교 윤리의 최고봉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 위의 이 복음은 단순한 도덕 규범이 아니라, 구약 율법의 산, 곧 시내산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새 언약의 산을 세운 사건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 아래 모였던 날, 하나님께서 산에 강림하셨습니다. 불과 연기, 번개와 천둥 속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습니다. 백성은 외쳤습니다. “
우리가 다 지키겠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의 피가 뿌려지기도 전에,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3천명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인간의 약속은 언제나 깨집니다.

그게 구약의 산입니다.
"지키면 복, 어기면 저주." 율법은 엄격했고, 은혜는 아직 멀리 있었습니다. 시내산은 성결하지 않으면 절대 가까이 갈 수 없는, 죽음의 산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시내산에서 율법이 떨어졌을 때 3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고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자 3천 명이 살아났습니다.

같은 하나님인데  무엇이 이 둘을 갈랐을까요? 그건 바로 십자가입니다. 율법의 무게를 짊어진 채 산 위에 서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죽이는 율법을 생명의 복음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절,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앉으시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익숙한 표현이지만, 이건 단순한 문장이 아닙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입을 여셨다”는 표현은 율법의 엄중한 선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앞에서, 제자들은 죽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 말씀을 기쁘게 듣고, 기대하며 기다립니다.

왜일까요? 그들의 귀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말씀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무너뜨리고, 은혜를 선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산은, 더 이상 돌격의 산이 아니라 은혜의 산이 된 것입니다.

미가서 3장에는 충격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해 성전이 있는 시온산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시온은 갈아엎은 밭이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이 되리라.” (미 3:12)

그런데 미가서 4장으로 넘어가면 전혀 다른 장면이 펼쳐집니다.
“끝날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많은 이방들이 그리로 몰려가리라.” (미 4:1)

같은 장소, 같은 산, 하지만 이제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그림이 펼쳐집니다. 이전에는 가까이 오면 죽었지만, 이제는 많은 민족들이 이 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도를 배우게 됩니다. 그 말씀이 지금,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도덕이 아닙니다. 은혜의 선포입니다. 팔복을 보십시오.
“복이 있나니...” 이건 조건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하라, 그러면 복 받으리라”가 아닙니다. “너는 이미 복 받은 자다" 입니다. 예수님께서 입을 열어 선포하시는 말은 완료된 은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켜야 복 받는 규율이 아니라,
복 받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를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 중심에 예수님의 피가 있고,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앞에서 떨지 않게 된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마지막은 기초 이야기로 끝납니다. 모래 위의 집과 반석 위의 집. 이건 단순히
"말씀을 듣고 지켜야 한다"는 교훈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어디에 기반해 듣고 있는가, 그 기초에 대한 말씀입니다. 내 의와 행위라는 모래 위에 쌓은 집인지, 예수님의 은혜라는 반석 위에 지어진 집인지, 그것을 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부수시고, 새 산 위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그 산 위로 불러 올리셨습니다. 율법의 산에는 경계선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산에는 담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방인까지도 그 산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 앞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산상수훈은 우리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를 살린 복음의 선언이요, 하나님 나라의 은혜의 윤곽입니다. 복 받은 자들이, 이 세상에서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를 위해 핍박당할 때조차도
복이 있다고 선포하시는 그 주님의 입술을 오늘도 들으십시오.

"복 있는 자여, 너는 이미 그 산 위에 세워진 교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