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날 예수께서 집에서 나오셔서, 바닷가에 앉으셨다. 많은 무리가 모여드니,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 무리는 모두 물가에 서 있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여러 가지 일을 말씀하셨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씨를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니, 새들이 와서, 그것을 쪼아먹었다. 또 더러는 흙이 많지 않은 돌짝밭에 떨어지니,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났지만, 해가 뜨자 타버리고, 뿌리가 없어서 말라버렸다. 또 더러는 가시덤불에 떨어지니, 가시덤불이 자라서 그 기운을 막았다. 그러나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었는데, 어떤 것은 백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육십 배가 되고,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13:1~9)
어릴 적, 시골 외갓집 마당 한켠에서 작은 화단을 가꿨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은 씨앗 하나를 심으며 나는 커다란 나무를 꿈꾸었지만, 며칠 뒤엔 새가 씨앗을 쪼아 먹었고, 어떤 날엔 잡초가 덮쳐 어린 싹을 숨도 못 쉬게 만들었습니다. 그저 씨를 뿌렸을 뿐인데, 열매를 거두는 길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나가 씨를 뿌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씨는 모두 동일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가지 다른 땅에 떨어집니다. 길가, 돌짝밭,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 전통적인 설교는 이 이야기의 초점을 '밭'에 입니다. 그리고 ‘좋은 밭이 되라’, ‘내 마음의 밭을 갈아엎자’는 교훈으로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성경은, 복음은, 그렇게 사람의 결심이나 노력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깊이, 더 분명히 선언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고, 의인은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롬 3:10). 돌짝밭이나 가시덤불을 스스로 치우라고 말하는 것은, 살아 움직일 수 없는 밭더러 자기를 스스로 경작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모순입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복음은 이렇습니다. 밭이 좋은 밭이어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씨가 그 밭에 떨어짐으로써 돌짝밭도, 가시밭도, 길가도 좋은 밭이 된다는 것. 바로 그것이 은혜입니다. 그 씨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갈 3:16).
이 비유는, 인간 스스로가 좋은 밭이 되도록 자신을 관리하라는 교훈이 아니라, 예수님이야말로 절망의 밭 위에 떨어진 씨앗이 되어 그 땅을 변화시키신다는 구속사의 복음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우리 같은 돌짝밭 위에 임하여 열매를 맺게 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비유인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마음의 상태를 점검하라는 심리적인 자극이 아닙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심기우는 ‘거룩한 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씨가 그 땅에 떨어짐으로 그 땅은 옥토가 되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 말씀 앞에 우리는 어떤 밭인가, 라고 자문하기 이전에, 내 안에 그 씨가 떨어졌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심기우셨는가? 그 복음이 내 마음을 뒤엎고, 내 자랑과 교만과 자기 의를 무너뜨리고, 이제 그 자리에 은혜와 감사와 믿음의 싹이 자라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씨는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 능력이나 결심이 아닌, 하나님께서 심으신 은혜의 씨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단지 씨를 뿌리시는 자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씨이시며, 우리 마음의 황무지에 심기어 새로운 생명을 자라나게 하시는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비유들을 살펴보며, 모든 비유 안에 감춰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찾는 여정을 시작해봅시다. 비유를 통해 예수를 보게 될 때, 우리는 더 이상 윤리와 도덕의 설교에 머물지 않고, 참된 은혜의 복음으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예수님은 오늘도 씨를 뿌리고 계십니다. 당신의 마음밭에, 지금 이 순간에도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자의 이야기는 단순한 농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마음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담은 생명의 교훈입니다. 예수께서는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 그리고 좋은 땅, 네 가지 땅에 뿌려지는 씨앗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핵심은 씨앗에 있는 것이 아니라, 뿌려지는 땅, 곧 우리 마음의 상태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막 4:14) 말씀은 뿌려집니다. 교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길거리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은 끊임없이 선포됩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듣느냐입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생명입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마음이 굳어져 있다면, 그 말씀이 우리 안에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말씀이 뿌려질 때 듣기는 하되, 즉시 사탄이 와서 그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다.” (막 4:15) 길가와 같은 마음은 딱딱한 마음입니다. 진리를 들어도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말씀은 그저 소리로만 스쳐 지나가고, 마음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한 채 곧 사라져 버립니다. 이런 마음은 삶의 주인이 여전히 자기 자신인 상태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믿기에 하나님 말씀은 필요 없습니다. 이들은 늘 “내 생각엔…”으로 시작하지, “주님이 말씀하시기를…”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 3:15) 마음이 완고한 자는 아무리 많은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기쁨으로 말씀을 받지만,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자들이요.”(막4:16~17) 돌밭은 표면적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속은 단단한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을 때 감정적으로 뜨거워집니다. 눈물을 흘리고 결단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얕은 감정일 뿐, 뿌리를 내릴 깊은 토양은 없습니다. 말씀을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고난이 오고 현실이 어렵게 되면 쉽게 포기합니다.
이들은 ‘예수 믿으면 잘된다’, ‘기쁘고 복 받는다’는 말엔 아멘하지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말씀엔 침묵합니다. 복음의 본질은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붙드는 것입니다. 기쁨이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진리에 뿌리를 내릴 때에만 진정한 기쁨이 시작됩니다.
“말씀이 자라지만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말씀을 막아 결실치 못하게 한다.”(막4:18~19) 가시덤불 같은 마음은 복음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세상의 것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도 붙들고 싶고, 세상의 성공도 놓치고 싶지 않은 이들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마음에 두 주인을 모실 수 없습니다. 결국 말씀은 점점 눌려지고, 세상에 대한 욕심이 마음을 장악하여 영적인 성장도, 변화도, 열매도 없이 살아갑니다.
이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늘 불안하고 불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이 통치하지 않고, 욕심이 통치하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나니…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막4:20) 좋은 땅이란 말씀 앞에 겸손한 마음, 순종할 준비가 된 마음입니다. 이들은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삶 속에서 순종으로 실천해 냅니다. 그래서 말씀은 이들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고, 마침내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땅이란 타고난 것이 아닙니다. 길을 가는 중에 밭을 갈고, 돌을 걷어내고, 가시를 뽑아내는 작업이 있어야만 비로소 좋은 밭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며, 회개하며, 고난 속에서 말씀을 삶으로 새기며 우리의 마음밭은 점점 옥토가 되어갑니다.
말씀 앞에 서는 태도가 신앙의 본질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막 4:9) 이 말은 단순한 경청이 아니라 영혼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있다는 것, 예배에 참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말씀이 내 삶을 뚫고 들어와 내 자아를 무너뜨리며, 진리를 심고 자라게 해야 합니다.
복음은 단순한 위로나 정보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생명이 제대로 자라기 위해서는 밭을 갈아야 합니다. 내 마음의 길가를 부드럽게 하고, 돌을 걷어내며, 욕심과 염려라는 가시를 뽑아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밭은 지금 어떤 상태입니까? 말씀이 심겨질 수 있는 ‘옥토’입니까? 아니면 겉으로만 신앙의 형식은 있지만 뿌리도 없고 열매도 없는 ‘가짜 밭’ 입니까?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을 뿌리십니다. 그 말씀이 열매 맺는 삶이 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 그것이 곧 우리의 믿음을 결정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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