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요 8:44)
얼핏 듣기엔 잔인한 선고 같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진리를 향한 가장 근본적인 경고이기도 합니다. 왜 어떤 이들에게 예수님은 생명이요 길이지만, 또 다른 이들에게는 '사탄', '바알세불', '뱀'으로 보였을까요?
이 질문의 중심에는 율법과 성전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과 성전을 주신 것은 단지 종교적 체계를 세우기 위함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리, 곧 오실 메시야를 미리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은 예표였고, 성전은 모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형은 실체가 오면 사라져야 하는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히10:1).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과 성전 자체에 집착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고 그분의 성품을 닮기보다, 율법의 조항을 지키는 데 만족했고, 성전을 ‘거룩한 건축물’로 신성시하는 데에 그쳤습니다. 진리로 나아가는 길로써의 기능은 상실되었고, 오히려 진리를 가리는 장막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리를 담는 껍질이 진리 자체를 대적하는 구조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사탄’과 헬라어 ‘사타나스’는 공통적으로 ‘대적자’, ‘반대자’를 의미합니다. 이는 특정 인격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진리에 반대되는 모든 세력과 태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방해하는 인간도, 정치적 반대자도, 심지어 사자도 ‘사탄’으로 표현된 경우가 있습니다(삼하19:22,민22:22).
예수님 당시, 율법주의자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문자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데 열심을 내면서도 정작 율법이 가리키는 실체, 즉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율법을 어기는 자요, 신성모독을 일삼는 자로 여겼으며, 나아가 귀신의 힘을 빌려 일하는 자, 즉 '바알세불'(사단의 왕)이라고 공격했습니다(마12:24).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뱀'으로 보였을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단순한 기적이나 설교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과 성전의 실체로서, 그것들을 해석하고 완성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율법에 묶인 자들에게는 예수님의 행위와 말씀이 질서 파괴, 전통 파괴, 신성 모독으로 비춰졌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불순한 자’,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는 사탄’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들었던 놋뱀을 기억해 봅시다. 뱀에 물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 놋뱀은, 오히려 뱀을 형상화한 것이었습니다(민21:9).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자신이 바로 그 놋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죄와 사망의 형상으로 보일지라도, 그분을 믿는 자는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율법의 저주와 율법주의자들의 오해 속에서조차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고 말 못하던 자가 말하게 된 사건은 단순한 치유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율법과 성전이라는 상징 아래 말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 속에 숨겨진 참 진리를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이 사건을 보고도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기적을 부정하며 예수님을 바알세불이라고 정죄했습니다. 그들의 눈과 귀는 열려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닫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꾸짖으셨습니다(마23:33). 이는 단지 모욕이 아니라 그들의 영적 정체를 폭로한 말씀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 생명을 얻고자 했지만, 그 율법은 생명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죄를 증거하는 거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기 의와 전통과 인간적 경건을 절대화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구원자가 아닌 '사탄', '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그분은 죄에서 건지시는 구세주입니다. 동일한 존재가 어떤 이에게는 '뱀'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구원'이 됩니다. 문제는 그분이 누구냐가 아니라, 그분을 어떻게 보느냐, 즉 우리의 눈이 열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율법은 거룩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곳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보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것들만 붙잡고 있다면, 율법과 성전조차 '뱀'이 되며 '사탄'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그분은 성전보다 크시며, 율법보다 완전하십니다. 그분을 오해하고 배척하는 이들에게는 예수님조차 '사탄'처럼 느껴지겠지만, 진리를 향한 눈이 열린 자들에게는 오직 생명과 은혜, 빛과 자유가 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8:31~32)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율법을 어기는 자'입니까, 아니면 율법을 완성하신 생명의 주입니까? 우리는 그분을 통해 진리를 볼 수 있는가, 아니면 그분조차 걸림돌이 됩니까? 그 대답이, 곧 생명과 사망을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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