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고후 3:5)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무엇인가에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몸, 가정, 돈, 일,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형성된 ‘나’라는 자아는 내 마음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죄인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이 아닌 ‘이 세상의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그것이 곧 죄의 상태라는 사실입니다.
“이건 그냥 일상 아닌가요?”라고 말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죄입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존재하도록 창조된 우리가 하나님 없이도 그럭저럭 살아내고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심각한 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더 이상 ‘닭’처럼 날아다니는 착각 속에 살 수 없습니다. 열심히 날갯짓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그것이 결국 ‘자기 힘’으로 비상하려는 의도라면, 우리는 여전히 옛 자아의 닭장 속에 있는 것입니다. 진짜 성도의 삶은 나를 형성하던 모든 옛것들인 건강, 돈, 착함, 열심, 성취 등, 그것에서부터 끊어져 나가는 자기부인의 과정을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
그 단절 속에서 비로소 새 자아가 만들어집니다. 하나님으로 내 안이 채워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과 관계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그 상태가 ‘새것’의 상태요, 그것이 바로 복음이 나를 새롭게 한 증거입니다.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 (고후 3:6)
율법의 의문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로는 결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열심과 헌신, 우리의 자격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를 살립니다. 그래서 복음은 은혜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보탤 수 없는 ‘좋은 소식’입니다.
왜 예수님은 아담 타락 직후 곧장 오시지 않았을까요? 왜 이스라엘은 40년 광야를 통과해야 했을까요? 왜 우리 인생엔 그렇게 많은 실패와 절망, 좌절이 존재할까요?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무력하고 불가능한 존재인지를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그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예수의 복음이 선물로 다가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때’입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이제 우리는 다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그분을 위하여 살게 됩니다. (고후 5:15)
우리는 더 이상 닭장 속에서 날갯짓하며 살아갈 존재가 아닙니다. 내 날개가 꺾이는 고난과 자기부인의 과정 속에서, 비로소 나는 독수리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등에 업히게 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참된 하늘의 비상을 경험하게 됩니다.
“옛것이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 5:17)
성도는 옛것과 새것을 분별할 줄 아는 자요, 옛것을 간직하며도 오직 새것, 곧 예수 그리스도로만 해석해 내는 자입니다. 옛 자아의 의로움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의 의만을 붙드는 삶이 진짜 하늘 백성의 모습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닭 날개를 붙들고 애쓰지 마십시오. 그것들을 내려놓으십시오. 다 빼앗기고, 다 비워지고, 다 죽어져서 예수라는 독수리의 등에 얹혀지십시오. 그때야말로 비로소 진짜 신앙, 진짜 은혜, 진짜 기쁨의 날갯짓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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