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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속으로

하나님의 불로 정결하게 되는 길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6. 16.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누가복음12:49).

예수님의 이 말씀은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로 들리기보다, 섬뜩할 만큼 강렬하고 낯설게 다가옵니다. ‘’이라는 단어는 본래 심판과 멸망, 고난과 고통을 연상시키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 말씀은 단지 세상에 재난이나 형벌을 던지시려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불’을 통해 정결케 하시는 은혜의 역사에 대한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내면에 쌓여 있는 찌꺼기를 태우시기 위해 오셨고, 그 불은 이미 우리 가운데 붙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은혜를 달콤하고 포근한 것으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참된 은혜는 정결케 하는 불입니다. 초기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
’을 일컬어 지혜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단지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선을 보존하고 악을 태우는 하나님의 강력한 정화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불은 영혼을 꿰뚫어 관통한다”고 표현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불은 단순히 외적인 삶의 고난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부패하고 오염된 본성을 태우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2~3절은 이 불이 얼마나 정밀하고 목적이 분명한지를 말합니다.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불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결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불은 금속의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 사용되고, 표백제는 숨은 때를 벗겨내기 위해 사용됩니다. 이것이 곧 불세례의 목적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 칭하는 우리가,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혼합되어 있고, 타협적이며, 자기중심적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불을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불은 고통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불은 영광의 임재이기 전에 반드시 연단의 고통을 동반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선다는 것은 단지 평안을 누리는 일이 아니라, 먼저 두려움과 떨림 가운데 자신을 정결케 하는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일입니다. 말라기는 묻습니다.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집니다. 하나님의 불 앞에서 우리가 견딜 수 있으려면, 이미 그 불 안에서 정결케 되는 경험을 했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이 불세례를 두 차원으로 이해했습니다. 첫째는 현재의 삶에서 우리가 회개할 때, 고난 속에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을 때 경험하는 불세례입니다. 이는 자기 죄를 스스로 판단하고 죽이는 성화의 불입니다. 둘째는 장차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삶의 공적이 불로 시험받는 최종적 불세례입니다(고전 3:12–15). 결국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겪게 되는 셈입니다. 이 땅에서 자발적으로 불을 받아들여 정결함을 추구할 것인가, 아니면 마지막 날 강제적으로 그 불 앞에 설 것인가. 초대교회는 후자를 피하고자 한다면 전자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현대의 복음은 종종 이 진리를 축소하거나 외면합니다. 은혜를 값싸게 만들고, 평안을 안일함으로 바꾸며, 성령을 단지 감정의 경험으로 축소시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성령의 세례가 단순한 환희와 감동의 체험이라면, 그 불의 세례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곧 우리 안의 쭉정이를 태우는 고난이며, 자기 부인의 십자가이며, 믿음의 불로 연단받는 과정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하나님의 불을 만났습니다. 떨기나무가 불에 타지만 사라지지 않는 장면은 그의 내면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는 40년간 광야에서 하나님의 손에 다듬어졌습니다. 육신의 자만심과 혈기의 정욕, 애굽의 지식과 권세에 대한 의존은 불에 타야만 했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열기와 굶주림, 목마름 속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배웠고, 그 고통의 불을 통과한 후에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쓰임은 불세례를 전제로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적인 능력이나 열심으로 감당되지 않습니다. 연단되지 않은 사람은 결국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욕망을 따라 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불을 주셔서 먼저 우리를 태우십니다. 하나님의 불은 단순한 고난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만을 남기려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불을 주시는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단지 나를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 나를 정결케 하시는 거룩한 분입니다. 둘째,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온전히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정결하지 않은 자는 결코 하나님을 제대로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깨끗하게 되는 만큼, 주님을 더 깊이 섬기고, 더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히 12:6). 하나님의 불은 사랑의 징계입니다. 불은 무섭지만, 그 불은 결국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시기 위한 도구입니다. 우리가 겪는 고난, 슬픔, 실패, 시험들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불 속에서 정금같이 나오기를 원하시며, 우리가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불은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은혜의 연장입니다. 그 불은 심판이 아니라, 정결함으로 이끄는 구원의 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불은 더 이상 파괴의 상징이 아니라 정화의 도구입니다. 이 불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임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 안에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불에 자신을 들이는 자만이 주님을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불은 두렵지만, 그 불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사람으로 다듬어집니다.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라”(히 12:29). 그러나 그 불 가운데 주님은 거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불에 들어오라고. 그 불 안에서 죽고, 그 불 안에서 새로워지라고. 그 불을 피해 숨지 마십시오. 불을 피하려다 구원을 잃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불 속으로 나아가십시오. 그곳에 주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