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홀로 걸어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의 어깨에 기대며 살아가는 여정입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어 줄 때, 우리의 존재는 더욱 단단해집니다.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때, 그 사람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또한 회복됩니다.
헬렌이라는 여자의 이야기는 바로 그런 삶의 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헬렌은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외모, 지적인 대화, 따뜻한 미소, 사랑스러운 가족. 그녀의 삶은 안정되고, 그녀의 결혼은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함께 산책하는 그 부부의 뒷모습에는 세월을 함께 견뎌낸 고요한 행복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 팀이었고, 서로에게 단단한 울타리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평화의 시간 속으로 잔잔한 균열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에게 치매 증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고, 얼굴이 낯설어지고, 함께 쌓은 세월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그 현실은 너무나 잔인했습니다.
그럼에도 헬렌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내이자 간병인으로, 통역자로, 그리고 한 인간의 마지막 존엄을 지켜주는 지킴이로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서로가 맞잡았던 손이 흔들리고, 40년 동안 하나였던 천 조각이 낡아 풀려나가듯 그들의 관계가 해체되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녀는 끝내 그 실을 놓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마음에는 매일이 겨울 같았을 것입니다. 웃음 대신 고함이, 기쁨 대신 눈물이 찾아오고, 사랑의 기억이 안개처럼 흩어지는 시간들. 그러나 그 모든 절망의 순간에도, 헬렌은 남편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녀는 바늘과 실을 꺼내어 찢어진 조각을 하나하나 꿰매듯, 사랑의 손길로 남편의 잔존한 기억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더 이상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왔습니다. 남편을 요양 시설로 보내야만 했습니다. 그때 헬렌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날마다 남편을 찾아갔습니다. 그녀의 방문은 의무가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남편이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습니다. 둘이 함께 창가에 앉아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사슴이 뛰어가는 뒷마당을 바라보는 그 작은 순간들이, 그들의 마지막 연대였습니다. 그 짧은 찰나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남편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쓰던 컵, 읽던 책, 걸치던 외투는 그대로 남았지만, 그를 부르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빈자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컸습니다. 조라 닐 허스턴이 말했던 것처럼, 그것은 “영원의 가장 잔인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헬렌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다시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서서히 평정을 되찾았고, 다시 삶을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언하는 일이었습니다. 끝까지 남는 것은 결국 사랑 하나뿐임을, 그녀의 삶이 보여주었습니다.
헬렌의 곁에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녀와 함께 울어주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녀 곁에는 기대어 설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서로의 짐을 나누어 지며 살아갑니다. 한 사람이 지쳐 쓰러지려 할 때, 다른 사람이 팔을 내밀어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손길이 연결될 때, 하나의 인간이 아니라, ‘공동체’라는 사랑의 그물망이 만들어집니다.
헬렌은 그 사실을 몸소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찬바람이 불어와도, 서로서로 기대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는 진리를 그녀의 삶으로 증명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도, 완벽한 사랑도 없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상처를 감싸주는 관계, 서로의 약함을 덮어주는 사랑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신 방식 아닐까요? “서로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갈라디아서 6:2)
사랑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지탱해 주기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넘어지는 이를 붙들고, 무너지는 마음에 기대어 주는 그 사랑이 바로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때로는 찢어진 천처럼 약하고, 상처투성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바늘과 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서로를 향한 따뜻한 손길입니다. 그 실로 다시 꿰매고, 이어가면 됩니다. 그래서 다시 함께 설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 곁에도 헬렌처럼 상처 입은 누군가가 있을지 모릅니다.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세요. 말없이 곁에 있어 주세요. 그렇게 서로 기대어 살아간다면, 우리 모두는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전도서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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