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요한복음16:7~11)
성령께서 오셨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해 나아가시던 그 마지막 밤,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중 가장 심오하고 깊은 진리가 바로 “내가 떠나가는 것이 유익이라”는 선언일 것입니다. 떠나가는 것이 어떻게 유익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제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의 부재는 곧 생명의 단절, 소망의 끝처럼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가야만, 보혜사 성령이 오신다." 그리고 그 오심은 단순한 위로 이상의 사건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당신의 모든 사역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하늘의 선언이요, 성령은 이제 이 땅에서 그 완성된 구속사역을 실재로 적용하고 선포하시기 위해 오신 분입니다.
성령의 강림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승천이 실패가 아닌 완전한 승리였음을 증명합니다. 성령은 단지 기적을 베푸는 초월적 능력이나 감정적인 열정의 불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인간의 심령 깊숙이 각인시키고, 그 사건이 나의 사건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오신 것은 예수님의 복음이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생명과 진리임을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 이하에서 예수님은 성령의 사역을 세 가지로 요약하십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죄에 대하여 성령은 인간의 근원적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데 있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세상은 죄를 도덕적 행위의 실패로만 이해하지만, 성령은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문제를 가리킵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은 곧, 자신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의미하는 반역입니다. 성령은 이러한 진리를 세상 가운데 폭로하시며,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케 하십니다.
의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세상이 유죄라고 정죄했던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며 높이셨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칭의(Justification)의 실체입니다. 성령은 인간이 만들어낸 자기 의가 얼마나 허무한지를 폭로하고, 오직 예수님의 의만이 우리를 살릴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심판에 대하여 세상 임금, 곧 사탄은 이미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를 따르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은 이 사실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인식하게 하시며, 우리가 더 이상 심판 아래 있지 않음을, 새로운 왕국에 속한 자가 되었음을 확증하십니다. 성령의 이 책망은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구원의 초청이며, 깨어남의 경종입니다.
성령의 또 다른 사역은 교회를 세우고 하나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오셔서 곧바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마가의 다락방에서 임하신 성령은 단지 ‘방언’이라는 이적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사건은 바벨탑 이후 흩어진 언어와 민족, 인간의 교만을 회복하시며, 하나 된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신 창조의 순간이었습니다.
성령은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 연합시키시고,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나누는 ‘한 몸’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은 우리는 이제 따로가 아닌 함께입니다. 이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생명의 연합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사역이 분명한 이 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기적'과 '신비'를 좇아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사라지고, 대신 눈에 보이는 능력, 축복, 번영이 신앙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적그리스도적’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성령의 진정한 사역을 왜곡하고, 인간의 욕망에 성령을 맞추는 위험한 시도입니다. 물질주의, 자본주의, 효율성 중심의 교회는 성령을 하나의 ‘수단’으로 전락시키며, 본질에서 벗어난 외식과 불법을 합리화합니다. 성령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일하시지 않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회개케 하시고, 자아를 죽이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를 더욱 깊이 알게 하십니다.
성령이 오셨다면, 우리는 반드시 변화됩니다.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의를 갈망하며, 이 세상의 심판을 인식하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셨다면, 우리는 복음 앞에 무너지고, 교회와 함께 하나 됨을 경험하며, 헛된 이적과 종교행위를 멀리하게 됩니다. 성령이 계시다면, 나는 ‘진짜 신자’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여전히 거짓된 신앙 속에 사로잡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점검해야 합니다. 내가 믿는 예수는 누구이며, 내가 따르는 성령은 어떤 분인가? 성령은 결코 사람을 우쭐하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추시고, 십자가 앞으로 데려가시고, 예수만을 높이게 하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성령은 교회를 세우시며, 복음을 선포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십자가의 영이시며, 고난과 자기를 부인하는 길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러므로 기적이나 체험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이 더 커지고 있는가, 교회를 더 사랑하게 되었는가, 십자가가 나의 자랑이 되었는가를 통해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확인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성령을 가장한 미혹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참된 성령은 여전히 말씀으로, 복음으로, 십자가로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진리 가운데로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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