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은 결국 아무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세상의 절반이 다른 절반을 비웃는 장면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한 팀이 다른 팀을 향해 “저 사람들은 현실을 몰라”라고 말하고, 교회 안에서는 한쪽이 다른 쪽을 향해 “저건 신앙이 아니다”라고 단정합니다. 정치, 교육, 신앙, 심지어 육아 방식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양쪽 모두 스스로를 ‘이성적인 쪽’이라 여기며 상대를 감정적이라 비웃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자기 생각만 고집하는 사람일수록 깊은 사고 대신 즉각적인 감정과 감각에 의존합니다. 화가 나면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먼저 반응하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바보로 만듭니다. 그 순간, 그에게는 ‘진정한 머리’ 대신 ‘경솔한 감각’만 남아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장난감을 빼앗기고 울부짖으며 “내 거야!”라고 외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었지만, 생각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든 열매에는 감싸주는 손이 있습니다. 어떤 과실이든, 그것을 감싸주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어떤 책은 혹독한 비판을 받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 책이 됩니다. 어떤 설교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깊은 회개와 위로의 계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한 목회자가 복음의 본질을 강하게 전할 때, 어떤 사람은 “너무 극단적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같은 말을 듣고 “드디어 내가 붙잡고 있던 가짜 신앙을 내려놓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의 메시지, 하나의 선택, 하나의 열매를 두고도 반응은 이렇게 갈립니다. 그러므로 몇몇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용기를 잃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균형이 필요합니다. 비난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찬사 때문에 들뜰 이유도 없습니다. 누군가의 칭찬 한마디에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에 따라 삶의 방향이 바뀐다면, 그 사람은 이미 자기 인생을 남의 손에 맡긴 셈입니다.
특히 일시적인 찬사, 유행처럼 번졌다가 사라지는 호평은 우리를 쉽게 가둡니다. “그들이 좋아하던 나”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고, 본래 가야 할 길 대신 박수가 더 큰 길을 선택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진짜 만족을 주는 찬사는 명망 있는 사람들의 찬사입니다. 여기서 ‘명망’이란 단순히 유명함이 아니라, 삶과 인격으로 검증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쉽게 박수 치지 않고, 쉽게 비난하지 않으며, 오랜 시간 지켜본 뒤 조용히 건네는 인정, 그 한마디는 백 번의 가벼운 찬사보다 무겁고 깊습니다.
결국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누구의 평가 속에서 살고 있는가? 한 사람의 칭찬, 한순간의 반응, 군중의 분위기에 나를 맡기고 있는가, 아니면 오래 참고, 깊이 보고, 진실을 아는 눈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비난에도 흔들리고, 찬사에도 취합니다.
그러나 진짜 지혜는 다릅니다. 비웃음 앞에서도 담담하고, 칭찬 앞에서도 절제합니다.ㅈ자기 길을 아는 사람은 소음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반으로 갈라져 서로를 비웃는 이 시대에, 우리가 선택해야 할 태도는 한쪽 편에 서서 더 크게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비웃음과 박수 너머에서 조용히 진실을 따르는 것입니다. 그 길은 늘 외롭지만, 그래서 더욱 자유롭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비난에서 교훈을 얻고, 어리석은 사람은 찬사에 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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