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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잘못 읽는 능력에 대하여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5.

“세상을 망가뜨리는 것은 거대한 악이 아니라, 아무 일도 아닌 듯 지나치는 우리의 무관심입니다.”

우리는 사회를 읽는 데 서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익숙하게 잘못 읽는 법을 배워 온 사람들인지도 모릅니다. 뉴스는 매일 쏟아지지만, 정작 눈앞의 사람을 읽지 못합니다. 힘들어하는 이의 절망은 “다들 힘들잖아”라는 말 한마디로 지워지고, 가진 자의 갑질은 “원래 세상은 그래”라는 체념 속에 감춰집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고개를 푹 숙인 채 서 있는 사람의 늘어진 어깨를 우리는 보지 않습니다. 그가 오늘 상사에게 들은 말, 거래처에서 당한 모욕, 아이 학원비를 계산하며 삼킨 한숨은 투명 인간처럼 사라집니다. 대신 우리는 그를 ‘그냥 피곤한 직장인’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버립니다. 그렇게 정리하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소주 한 잔에 느끼는 짜릿한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한 잔이 사실은 하루를 버텨낸 최소한의 보상이라는 사실, 더 줄 게 없어서 더 마시지도 못하는 서민의 빈곤이라는 사실은 굳이 꺼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술 좋아하는 사람”으로 치환해 버립니다.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이미지로 바꾸는 데 우리는 능숙합니다.

“좋은 게 좋지.” 이 말은 갈등을 피하는 지혜처럼 들리지만, 많은 경우 부당한 힘의 균형을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부서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 불편한 농담을 던져도, 거래처의 무례한 요구가 반복되어도, 동네에서 약자가 손해를 보아도 우리는 대개 고개를 끄덕입니다. 괜히 문제 삼았다가 피곤해질까 봐, 나만 손해 볼까 봐, 그렇게 우리는 스스로 침묵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부당함에 동의한 사람이 됩니다.

철옹성을 먼저 쌓고, 남의 어깨를 디딤돌 삼아 올라간 사람이 성공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회에서, 그 방식이 틀렸다고 말하는 일은 점점 촌스러운 일이 되어 갑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묻지 않는 태도, 그게 현실적인 태도라는 이름으로 포장됩니다.

이기적 파티와,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다음 날 우리는 타인 말고 ‘나’에 집중하는 데 아주 익숙합니다.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고, 주변을 외면하는 일은 생존 전략처럼 여겨집니다. 그 이기적인 파티에서 사람들은 적색 와인 잔을 부딪치며 웃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춥니다. 세상은 불공평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괜찮다는 표정입니다.

그러다 큰일이 한 번 터집니다. 사고, 재난, 스캔들, 위기, 모두가 잠시 놀라고 분노합니다. 그러나 “이번만 잘 넘기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좋은 옷을 입고, 오곡밥을 먹으며, 꿀잠을 잡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불편함만 잠시 지나갔기 때문에 우리는 안도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거창한 영웅이 아닙니다. 위험에 노출된 위급한 이에게 필요한 것은 슈퍼히어로가 아닙니다. 길가에 쓰러진 사람 옆에서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착한 사마리아인 한 사람이면 됩니다. 아픈 사람에게는 기적보다도, 제때 먹는 약 한 봉지가 절실합니다. 동의보감의 약효란 결국, 필요한 순간에 주어지는 적절한 돌봄입니다.

굶는 사람에게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배부른 한 끼, 쌀밥 한 그릇이 필요합니다. 추위에 지친 몸에는 이념이 아니라, 벚꽃 무늬가 찍힌 빨간 내복 한 벌이면 충분합니다. 그 사소해 보이는 것들이 누군가의 하루를, 아니 삶을 붙들어 줍니다.

전쟁과 폭동의 위험 앞에서 우리는 늘 거창한 방책을 찾다가 실패합니다. 그러나 좌절한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당근’ 하나가 다시 일어설 힘이 되기도 합니다. 인정 한마디, 손 내밂 한 번, “괜찮다”는 짧은 문장 하나가 사람을 살립니다.

모두가 사는 게임의 법칙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남을 밟고 올라가는 게임에 익숙해져 왔습니다. 그러나 그 게임은 결국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 뿐입니다. 누군가는 계속 밀려나고, 누군가는 끝없이 방어해야 합니다. 그릇됨을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 그 불안은 우리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모두가 사는 게임의 법칙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따뜻한 시선을 먼저 깔아 놓는 것입니다. 서로를 밀어내는 대신, 양탄자처럼 길을 내어 주는 태도입니다. 그 길은 화려하지 않지만, 분명 반짝입니다. 오늘 누군가를 이해하려 애쓴 순간, 외면하지 않고 한 발 멈춘 그 선택이 바로 그 반짝임입니다.

우리는 사회를 다시 읽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더 빨리,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천천히, 더 깊이. 그때 비로소, 우리가 놓쳐 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얼굴 속에서, 결국 우리 자신의 모습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