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은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진리는 절뚝거리며 따라옵니다.”
사람은 정보를 먹고 삽니다.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삶의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의 판단은 누군가의 말, 전해 들은 이야기, 설명과 해석에 의존합니다.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귀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귀가 진리의 정문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귀는 오히려 진리에게는 좁은 곁문이고, 거짓에게는 활짝 열린 대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대체로 조용하고, 설명이 필요하며, 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거짓이나 왜곡은 자극적이고, 감정을 흔들며, 듣는 순간 판단을 대신해 줍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A 부장이 큰 실수를 해서 이번 프로젝트가 망가질 뻔했대”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합시다. 이 말은 순식간에 분노나 조롱, 혹은 불안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A 부장이 규정대로 문제를 제기했고, 그 과정에서 불편해진 누군가가 감정을 섞어 이야기를 퍼뜨렸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하나였지만, 그것이 지나온 사람 수만큼 색이 입혀집니다. 정보는 이동하는 순간부터 오염될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오는 길이 멀수록, 거쳐 가는 입이 많을수록, 그리고 감정이 섞일수록 그 가능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집니다.
정열은 사실에 색을 칠합니다. 정보가 왜곡되는 가장 큰 이유는 악의가 아니라 정열입니다. 흥분, 분노, 억울함, 정의감, 열심 같은 것들 말입니다. 정열은 언제나 자신이 스치는 사실에 색을 입힙니다. 그리고 그 색은 대개 “이렇게 느껴야 한다”는 인상을 함께 남깁니다.
뉴스를 떠올려 보십시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매체마다 제목과 강조점이 전혀 다릅니다. 어떤 곳은 분노를 부추기고, 어떤 곳은 공포를 키우며, 어떤 곳은 영웅과 악당을 명확히 나눕니다. 사실 자체보다 느낌이 먼저 도착합니다. 사람들은 사실을 판단하기 전에 이미 감정으로 반응해 버립니다.
개인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칭찬하며 “저 사람은 정말 믿을 만해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경계를 풀기 쉽습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비난하며 “저 사람은 위험해요”라고 말할 때, 우리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며 그 말을 더 신중하게 듣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이미 마음이 기울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칭찬하는 자에게는 조심스레 귀를 기울이고, 비난하는 자에게는 더욱 경계하며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 말은 역설적이지만 현실적입니다. 칭찬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고, 비난은 우리를 흥분시키기 때문입니다.
정보는 내용보다 의도를 먼저 봐야 합니다. 정보를 얻을 때 신속하라는 말은, 무턱대고 빨리 믿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감정이 개입되기 전에 사실의 뼈대를 먼저 붙잡으라는 뜻입니다. 흥분이 번지기 전에, 이야기가 커지기 전에, 원형에 가장 가까운 지점을 확인하라는 경고입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누군가는 동의를 얻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피하려 하며, 누군가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어 합니다. 정보는 거의 언제나 의도를 싣고 이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달자의 발걸음을 따라가기보다, 한 발 앞서 그 의도를 읽어야 합니다.
예컨대 조직 내 소문, 교회 안의 이야기, 가족 간의 갈등 서술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감정으로 이 말을 하고 있는지를 보지 않으면, 우리는 사실이 아니라 감정의 편을 들게 됩니다.
귀를 닫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을 의심만 하며 살라는 냉소의 권면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깨어 있으라는 요청입니다. 귀를 닫지 말되, 귀를 훈련하라는 것입니다. 빠르게 듣되, 느리게 판단하고, 감정보다 사실을 먼저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시대일수록, 진리는 크지 않고 조용하며, 종종 불편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더욱 신속해야 합니다. 감정이 사실을 덮어버리기 전에, 의도가 진리를 가리기 전에, 우리는 한 발 앞서 서 있어야 합니다. 정보를 얻을 때 신속하십시오. 그러나 믿을 때는, 언제나 신중하십시오. 그 균형 위에서만, 우리는 타인의 말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이야기는 두 번 확인되기 전까지는 반쯤만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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