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혜란 모든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의심이 드는 문 앞에서는 멈출 줄 아는 것이다.”
사람은 종종 “하면서 생각해 보자”라는 말로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아직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고, 어딘가 불안하지만, 기회를 놓칠까 두려워 일단 움직입니다. 그러나 의혹이 들 때는 결코 일에 착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의심은 마음의 작은 흔들림이 아니라, 이미 판단력이 균열되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가령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사람이 친구의 권유로 공동 사업을 제안받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조건이 좋아 보입니다. 투자금은 적고, 수익은 크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 이런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서두르지?”, “계약서가 너무 단순한데?”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다독입니다. “괜히 내가 소심한 거겠지.” 그리고 결국 도장을 찍습니다. 이 순간, 실패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손해가 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걱정은 숨겨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행동에 옮기면 불안은 사라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행동 속에서 걱정은 더 분명해집니다. 회의 자리에서 그는 상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과도하게 신경을 씁니다. 숫자를 확인할 때마다 ‘혹시 내가 놓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듭니다.
이런 태도는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자신감 없는 눈빛, 지나친 방어, 어설픈 질문들은 곧 약점이 됩니다. 특히 상대가 경쟁자이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한 사람일 경우 이 약점은 치명적입니다. 상대는 본능적으로 압니다. “이 사람은 확신이 없다.” 그 순간부터 협상은 이미 기울어집니다.
처음의 의심은 나중에 ‘저주’가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시간이 흐른 뒤입니다. 일이 본격적으로 굴러가기 시작하면, 사람은 쉽게 빠져듭니다. 이미 투자한 시간과 돈, 체면 때문에 물러서지 못합니다. 그때부터는 의심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의심을 덮기 위해 더 무리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던 사람이, 어느 순간 무모해집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멈출 수는 없잖아.” 이때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젓게 됩니다. 처음부터 위험해 보였던 그 일이, 이제는 모두의 눈에 분명한 우려스러운 행동이 됩니다. 공공연한 저주처럼 들리는 말들이 따라붙게 됩니다. “그럴 줄 알았다.” “처음부터 이상했지.”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비극은 처음의 작은 의심을 무시한 선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확률은 지혜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합니다. “성공 확률이 60%면 해볼 만하지 않나?” 그러나 확률에만 의존하는 것은 지혜가 아닙니다. 확률은 숫자일 뿐이며, 판단은 인간의 몫입니다. 숫자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 불편함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경험, 직관, 도덕적 감각, 혹은 아직 언어로 설명되지 않은 위험 신호일 수도 있습니다. 이미 충분히 고민하고, 여러 번 검토한 일도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이성과 그른 판단력 위에서 내린 결정이 성공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멈추는 용기는 실패가 아닙니다. 의심이 들 때 멈추는 것은 비겁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가장 이성적인 용기입니다. 세상은 늘 “도전하라, 밀어붙여라, 기회를 잡아라”고 외치지만, 진짜 지혜는 때로 이렇게 속삭입니다. “지금은 아니다.” 하지 않음으로써 피한 실패는 기록에 남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급히 시작해 맞이한 실패는 오랫동안 삶을 갉아먹습니다. 그러니 마음이 분명하지 않을 때, 판단이 흐릿할 때는 과감히 멈추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의혹이 드는 일이라면, 그 일은 아직 당신의 때가 아닙니다. 그리고 어쩌면, 영원히 하지 않아도 될 일일지도 모릅니다. “계산은 속일 수 있어도, 분별은 속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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