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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세상의 힘과 복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사도행전 4:13~14)

사도행전 4장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유대 종교 권력자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들은 학문도, 사회적 지위도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그들을 심문하던 자들은 오히려 당황해하며 “
할 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들이 예수와 함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복음이 세상과 어떻게 부딪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자리에서는 늘 세상의 힘을 가진 자들과의 충돌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세상이 붙잡고 있는 힘과 권력, 명예, 능력을 전부 무너뜨리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힘이 왜 복음과 충돌하는가? 세상이 추구하는 힘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힘 자체가 인간의 생명처럼 여겨지곤 합니다. 권력, 명예, 능력, 업적, 이 모든 것들은 인간이 스스로 쌓은 바벨탑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말합니다. “
그 모든 수고와 능력으로는 하늘에 이를 수 없다. 너희의 힘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이 말은 세상의 힘을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복음은 언제나 환영받지 못했고,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도, 사도들도 바로 그 지점에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습은 어떠한가? 오늘날 기독교 지도자나 교회가 세상 권력 앞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모습을 볼 때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
복음이 정말 선포되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이 듣고 싶어 하는 도덕적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기독교적 언어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깨끗하게 살자’, ‘평화를 이루자’, ‘약한 이들을 돕자’라는 말만 한다면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도덕적 강연에 불과합니다.

그 자체로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복음의 중심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선함을 격려하는 소식이 아니라 인간의 선함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없음을 드러내는 소식입니다. 복음은 “
착하게 살아라”가 아니라 “네가 착하게 살 수 없는 자임을 인정하라”는 외침입니다.

진짜 착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복음은 우리를 착하게 만들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
나는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도덕적으로도 윤리적으로도 설 수 없는 자구나.” 그래서 성도는 자기 안에서 갑자기 선한 삶이 흘러나올 때 자기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아… 내 안에 예수가 살아 계시구나.” 성도의 삶은 세상과 달라야 합니다. 착함을 통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때문에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눅 6:26) 복음은 세상에서 박수를 얻지 못합니다. 복음이 드러나는 곳에서는 세상의 힘과 가치관이 도전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은 늘 세상으로부터 인기가 있었지만 진짜 복음 전하는 자들은 결국 세상에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윤리와 공조하며 ‘
깨끗하고 착한 사회 만들기’로 나아가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방향과 전혀 다릅니다. 복음은 문제를 해결하는 심리치료가 아닙니다. 현대 교회는 종종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을 심리학적 접근으로 해결해주려 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문제를 제거하는 방식이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흔들리지 않을 마음을 주는 방식으로 역사합니다.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더 이상 ‘문제 아닌 것’이 되는 은혜입니다. 가난해도, 답답해도, 그 현실 안에서 “아…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었구나”라는 새로운 눈이 열리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입니다.

믿음의 성숙은 ‘
기적 체험’이 많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는 하나님께서 많은 기적과 특별한 경험을 허락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성도는 ‘현실이 바뀌는 표적’보다 ‘현실을 견디는 영적 힘’을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숙한 자는 하나님이 환경을 바꿔주지 않아도 그 환경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세상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베드로와 요한은 학문이나 힘이 없었지만 예수님을 증거하는 자리에서는 세상의 권세도 할 말이 없도록 만드는 능력을 보였습니다. 그 힘은 세상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힘, 예수와 함께 있었던 자들의 힘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세상의 인정이나 박수를 얻기 위해 기독교를 미화하거나 도덕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은 세상에 박수 받을 메시지가 아니라 세상의 기초를 흔드는 메시지입니다. 성도는 세상을 거스르는 자들이며 세상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은혜에 붙들려 사는 자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도행전 4장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복음의 본질이자 성도의 정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