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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복음의 실제성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9.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사도행전 4:17~20)

사도행전 4장에서 관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법정 앞에 세워 놓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도 하지 말고, 가르치지도 말아라.” 복음의 확산을 막기 위한 세상의 위협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제자들의 이 고백에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이 전한 복음은 ‘
설득 기술’이나 ‘철학적 지식’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헬라 철학을 수학한 학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지식, 논리, 정보, 기법을 동원해서 “
어떻게 사람을 설득할까” 고민한 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와 함께 있었고, 예수를 보았고, 예수를 들었고, 예수의 행하신 일과 죽으심과 부활의 실재를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의 증언의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곧 기독교의 첫 번째 본질입니다. 기독교는 ‘
가르쳐진 철학’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증언입니다.

둘째, “
보고 들은 것”은 복음의 ‘역사성’, 즉 실제성을 의미합니다. 영원 속에서 하나님은 이미 완전한 구원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영원한 계획을 시간과 공간 안으로 실제화 하셨습니다.

이것이 곧 성경 전체의 구조입니다.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 율법과 제사, 전쟁과 포로와 회복,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진노, 끝없는 실패와 은혜의 반복… 이 모든 역사적 사건은 단 하나를 보여줍니다. “
왜 인간은 오직 예수만을 믿어야 하는가?” “예수 외에 소망을 둘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역사는 복음을 향해 흐르고, 복음은 역사 속에서 드러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실제성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가리키는 그림자였습니다. 구약의 “
성전”은 인간이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림자였고, 모형이었고, 실체이신 예수님을 향한 지시표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성전을 자기 의, 자기 행위, 자기 열심으로 채워 넣으려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
성전 문을 닫아라.”(말라기) 구약 성전이 헐릴 때, 예수님께서 선언하십니다.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일으키리라.” 그리고 이는 자기 몸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성전의 완성, 성전의 실체,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진짜 길이 예수님의 몸 안에서 드러났습니다. 이 역시 “
역사 속에 실제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신약의 기록도 모두 ‘
예수의 실제성’을 증언합니다. 빛이 왔는데 죄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구원자가 왔는데 인간은 그분을 거절했습니다. 진리가 왔는데 사람들은 눈을 가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죄인들을 위해 침묵하지 않으셨고, 물러서지 않으셨고, 십자가까지 걸어가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모든 것을 실제로 보고, 실제로 들은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그들을 변화시켰습니다. 두려움 많고, 자기 영광에 사로잡혀 싸우고 시기했던 그들이 이제는 죽음을 무릅쓰고 예수를 증언하는 사람들로 바뀐 것입니다.

제자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며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혈루증 여인의 회복도, 38년 된 병자의 일어남도, 오병이어도… 그저 “
기적의 신기함”만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해 말씀하실 때도 각자 자리 다툼에 몰두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영의정·좌의정을 요구했고, 나머지 제자들은 분노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시기하고 경쟁하는 모습… 우리와 너무 닮지 않았습니까?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결국 평생 “
”라는 우상을 붙들고 사는 우리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부활하여 오셨습니다. 그리고 “
평안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변한 이유는 자기 노력 때문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를 실제로 보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설명되는 철학이 아니라, 증언될 사건입니다. 기독교는 “
좋은 말”이나 “좋은 가치”의 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사건”의 종교입니다. 실제 일어난 일의 증언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그래서 말했습니다. “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배운 것”을 말한 것이 아니라 “경험한 복음의 현실”을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이것입니다. 성경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성경 속 예수님의 실제가 우리의 삶 속에 “실제로” 일어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