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 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 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 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세기 18:26, 32, 19:24~26)
아브라함과 롯이 가나안에 정착해 살아갈 땅을 정할 때, 롯은 소돔 사람들이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고 물이 넉넉한 것만 보고 소돔땅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소돔 사람들의 악한 행실이 극에 달하자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멸하려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조카 롯을 살리려고 하나님께 부탁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소돔에 의로운 사람이 50명이 있어도 그곳을 의인과 함께 멸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물음에 하나님은 의인이 50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겠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소돔에 의인의 수가 50명이 아니라 단 10명만 존재한다고 해도 멸하지 말아달라고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은 그 렇게 하겠노라고 아브라함의 부탁을 받아들이십니다. 하지만 소돔에 의인이 단 10명도 없어 하나님은 소돔을 멸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극적인 장면을 화가들이 놓칠 리 없습니다. 많은 화 가들이 이 장면을 그렸지만, 여기에 소개하는 존 마틴의 <소돔과 고모라 > 만큼 우리를 묵상에 이르게 하는 그림은 흔치 않습니다. 도망하는 롯의 급박함, 하나님이 내리신 무서운 유황불, 롯에게서 멀리 뒤쳐져 소금기둥으로 남은 롯의 아내의 아득함, 그리고 이 순간을 더욱 극적으로 승화시키는 번개와 그 번개로 나눠지는 재앙과 구원의 갈림길에 이르기까지 말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외감으로 온 몸이 전율합니다. 결국 두고 온 소돔땅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뒤처지다가 하나님이 내리신 유황불에 휩싸여 소금기둥이 되고 만 롯의 아내를 보고 있으면 가슴 한 켠이 저미면서도, 그렇게밖에 하실 수 없었던 하나님의 커다란 뜻을 깊이 되새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헛된 이생 을 생각하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말고 영생을 선택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누가 9:62)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린도후서 4:18)
창세기의 어느 장면보다도 우리 마음에 깊은 충격을 주는 사건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시지만, 그분의 오래 참으심조차 더 이상 머물 수 없을 만큼 죄악이 관영한 도시,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하나님의 공의 앞에 무너졌습니다.
처음부터 소돔은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는 물이 넉넉하고 보기에 좋은 땅이었지만, 그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들의 삶의 방식이나 영적 상태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풍요로움만 보고 그곳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은 곧 육신의 안락함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선택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자주 삶의 갈림길 앞에 섭니다. 눈앞의 이익, 편안함, 안정이 때로는 우리를 하나님의 뜻이 아닌, 세상의 중심으로 이끌곤 합니다. 롯처럼 ‘어디에 거할까’ 하는 문제는 단순한 거주의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마음을 둘까’, ‘무엇을 기준 삼을까’ 하는 신앙의 방향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소돔의 멸망을 앞두고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구합니다. “그곳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멸하시겠습니까?”에서 시작하여 결국 “의인 10명만 있어도 멸하지 마시겠습니까?”라는 간청에 이르기까지, 그는 점점 숫자를 낮추어가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합니다. 하지만 그 땅에는 단 열 사람의 의인조차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죄악을 끝내 외면하지 않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죄를 그대로 두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죄를 심판하심으로써 거룩함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관용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은 롯의 가족을 구출하시며 단 하나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 하지만 롯의 아내는 명령을 어기고 소돔을 돌아봅니다. 단지 눈길 하나를 돌린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불순종이자 미련의 상징으로 보셨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소돔에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에 대한 집착, 남겨진 소유와 삶에 대한 아쉬움이 그녀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앞서게 했고, 결국 심판 가운데 소금 기둥으로 굳어져버립니다. 이것은 단순한 신화적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인 경고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걸어가는 자는 과거를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떠나야 할 소돔, 즉 세상의 죄악과 안락함, 육신의 정욕은 더 이상 미련을 품을 대상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후서 4장에서 말씀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참된 믿음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를 향해 오늘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는 길입니다.
소돔의 멸망은 단지 한 도시의 멸망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과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전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긍휼을 믿고 간청했지만, 롯의 가족조차 온전히 의롭지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는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강력한 교훈입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앞을 향해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세상에 대한 미련, 과거에 대한 집착, 손에 쟁기를 잡고서도 여전히 돌아보고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회개합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나라의 시민권과 영생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제는 앞을 보고 걸어가야 할 시간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소돔은 이미 심판 아래 있습니다.
“영생을 바라보며, 멸망의 자리에서 떠나십시오.”, “뒤를 돌아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