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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31.

조르주 드 라 투르, <아내에게 조롱받는 욥>, 1630, 프랑스 에피날 미술관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하지 않겠나이까.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기 1:9~11, 20~22)

사랑의 하나님이 계신데 왜 우리에겐 고통과 고난이 끊이지 않는가라는 물음은 신앙이 있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풀리지 않은 질문입니다. 욥기는 신학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이 문제를 다룹니다.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는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 친구와 엘리후와의 지난한 변론보다 아내와의 짧은 대화의 순간을 신비스럽고 정적인 구도로 묘사했습니다. 욥의 고난을 그린 라 투르는 욥과 하나님 사이의 긴장감을 극대화시켜 우리가 깊은 묵상에 들도록 합니다. 이 그림에서 유일한 빛은 가물거리는 촛불 하나입니다. 그림 속 꺼져가는 촛불은 욥의 초라한 처지를 나타내는 듯합니다.

'
의인'인 욥은 왜소하고 보잘 것 없습니다. 그의 발치에는 상처를 긁던 깨진 질그릇 조각이 놓여 있습니다. 화면을 압도적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상대적으로 거대하고 견고한 아내의 모습입니다. 아내는 화사하고 풍성한 붉은 옷을 입고 " 이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며 욥을 조롱합니다. 하지만, '왜 의인이 고통 받아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없습니다. 초기에 욥은 이미 이 질문에 대한 결론을 다음과 같이 내렸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 2:10)

욥은 의인이지만 사람의 '의'가 하나님의 '의'를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욥이 다시 하나님의 인정과 축복으로 과거보다 훨씬 큰 축복을 받았다지만, 사실 욥이 받은 진짜 큰 축복은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된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기 42:5)

누구나 한 번쯤은 묻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고통이 계속되는가?",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면, 왜 의로운 자가 고난을 당하는가?" 이 물음은 수천 년 전, 욥이라는 인물 앞에서도 똑같이 던져졌습니다. 성경은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욥 1:1)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누구보다 모범적이고 경건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삶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건강마저 잃었습니다. 아내는 그에게 말합니다. “이제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러나 욥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리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2)

이해할 수 없지만 찬송하는 믿음, 이것이 욥의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고난의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알기 전에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거두지 않았습니다. 그의 고난은 어떤 ‘
죄의 대가’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지, 아니면 단지 축복 때문에 하나님을 따랐는지를 드러내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사탄은 말합니다.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욥 1:9) 즉,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 경외하는 척하는 것 아니냐는 도전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지킵니다. 그에게는 설명이 주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들은 고난을 그의 잘못으로 몰았습니다. 욥은 분노하고, 질문하고, 때론 절망 속에서 하나님을 향해 외칩니다. 하지만 그 끝에서 욥은 말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그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욥이 받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다시 회복된 재산이나 새로 태어난 자녀들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알게 된 것, 그분을 만난 것, 그것이 진짜 복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설명되지 않는 고난 앞에 설 때가 많습니다. 신앙을 지켜도 병은 찾아오고, 성실히 살아도 억울한 일을 겪습니다. 그때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왜입니까?" 그러나 때로 하나님은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계산과 다르고, 때로 이해를 초월합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은 말합니다. 믿음이란 모든 것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붙드는 것임을 말입니다.

어쩌면 신앙이란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이 고백을 눈물로 드리는 삶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지금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욥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고난 너머에서, 우리는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뵈올 날이 올 것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선하시며,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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