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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가인과 아벨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31.

베첼리오 티치아노, <가인과 아벨>, 1542~44,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타 마리아 델라 실루트 성당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세기 4:2~9)

'
가인과 아벨'은 티치아노가 산토 스피리토 성당 천정화로 그린 '이삭의 제물', '다윗과 골리앗' 과 함께 3 부작을 이룹니다. 고전적인 균형미보다 주관적인 감정 표현을 잘 나타낸 걸작입니다. 인물들의 뒤틀린 자세와 제단에서 피어오른 검은 연기가 만든 급박한 나선형 구도에서 가인의 아벨을 향한 질투심과 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가인의 이 말은 단지 변명이나 반문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기려는 인간의 뿌리 깊은 자기중심성의 외침입니다. 인간은 태초부터 이렇게 자신에게 유리한 책임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려 해 왔습니다.

창세기 4장에는 아담과 하와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형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동생 아벨은 양을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혹자는 가인의 제물이 곡식이었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으니 피의 제사가 아닌 가인의 제사는 부족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제물의 종류 자체가 문제였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신 구절을 보면, 그 핵심이 분명해집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창 4:7)

이 말씀은 단순히 제사의 형식이 아니라, 그 제사를 드리는 사람의 태도와 삶, 즉 ‘
마음’과 ‘믿음’의 상태가 문제였음을 보여줍니다. 히브리서 11장 4절도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은 형식보다 중심을 보십니다. 예물이 곡식이든 양이든, 하나님은 믿음 없는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자기 의의 표현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의롭다 여기며, 자신의 제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분노하고 동생을 죽였습니다. 결국 그 제사는 가인의 자기중심적 삶의 연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나는 교회에 갔으니’, ‘헌금을 했으니’, ‘봉사도 했으니’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셔야 한다는 마음이 숨어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창 4:6)

죄는 언제나 문 앞에 엎드려 있습니다.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그 죄는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다스립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죄를 이길 수 있는 책임이 인간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 책임을 거부했습니다. 죄를 핑계 삼아 살인을 저질렀고, 하나님의 물음 앞에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며 책임 회피로 일관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마 9:13)

우리는 종종 제사, 곧 예배와 봉사, 열심을 앞세워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보다 더 본질적인 것을 원하십니다. ‘
긍휼’, 즉 이웃을 향한 사랑과 책임입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가 진정한 예배라면, 그 예배는 나를 이웃에게로, 나보다 약한 자에게로 이끕니다. 예배가 끝난 후에도 내가 여전히 무관심하고, 경쟁심에 사로잡혀 누군가를 무시하거나 밀어낸다면, 그 제사는 가인의 제사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벨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예배하고, 이웃을 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벨의 피는 땅에서 울부짖었지만, 예수님의 피는 하늘에서 긍휼을 외칩니다. 우리가 그 은혜로 살게 되었으니, 이제는 우리도 가인처럼 묻지 말고, 아벨처럼 살아야 합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예, 주님.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삶 속에서 실현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