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잠언 23:3)
우리는 흔히 축복을 눈에 보이는 풍요로 오해합니다. 잘 차려진 식탁, 대접받는 자리, 부족함 없는 환경 앞에서 마음은 자연스럽게 풀어지고 경계는 느슨해집니다. 그러나 잠언은 말합니다.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겉으로 보기에는 호의요 은혜처럼 보이지만, 그 음식은 때로 사람의 마음을 시험하고 의도를 가늠하는 속이는 음식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시시의 프란체스코는 이 말씀을 삶으로 읽어낸 사람입니다. 그는 가난을 잠시 선택한 삶의 방식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아내처럼 받아들였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라”, “여행을 위하여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그는 이 세 말씀을 해석하거나 완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살아내고자 애썼습니다.
어느 날 프란체스코는 화려한 파티에 초대받습니다. 식탁 위에는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져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음식에 집중된 그 자리에서 그는 품속에서 다른 곳에서 얻은 소박한 음식을 꺼내어 조용히 먹었습니다. 그것은 무례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방향을 잃지 않겠다는 고백이었습니다. 환경이 바뀌어도, 대접이 달라져도, 그는 여전히 가난한 자로 서 있었고, 음식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잠언이 말하는 ‘속이는 음식’은 반드시 독이 든 음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욕망을 자극하는 달콤한 것들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호의일 수도 있고, 인정과 명예, 혹은 안전을 보장해 주는 조건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고위 관리나 권력자의 초대 자리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 음식은 단순한 대접이 아니라, 우리의 태도와 반응을 살피고, 우리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언은 말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특별히 몸가짐을 삼가고, 상대의 의중을 분별하라고, 먹는 일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왜 이 자리에 초대되었는지를 살피라고, 아무 생각 없이 누리는 호의는 나중에 빚이 되어 돌아올 수 있고, 한 끼의 만족이 긴 곤욕의 시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맛있는 음식’ 앞에서 경계를 풀고 있습니까. 조건이 붙은 호의, 계산된 친절, 나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배려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마음을 내어주고 있습니까. 그 자리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자리인지,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자리인지를 분별하지 못한 채, 그저 대접받는 기쁨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지혜는 음식을 거절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 음식의 의도를 읽는 데 있습니다. 먹든 먹지 않든,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붙들려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프란체스코처럼 우리는 매 순간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따르고 있는가?” 음식인가, 사람의 시선인가, 아니면 여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까.
아무리 진귀한 산해진미를 대접받아도, 그 음식에 열중하지 않고 그 자리를 주신 목적을 분별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자리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선의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속이는 음식 앞에서도 마음을 지키는 사람, 그것이 잠언이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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