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
우리는 본능적으로 보이는 것에 약한 존재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마음이 놓이고, 손에 잡힐 때 안정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종종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눈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럼 믿을 수 있을 텐데.”
이 습관은 일상의 선택에서만이 아니라 믿음의 자리에서도 고개를 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조건을 겁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응답이 분명히 보이면,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믿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영적으로 무너져 가던 시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우상에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금으로 만든 신상은 눈에 보였고, 제사는 눈에 띄는 행위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신에게 절하고 제사를 드리니, 이전보다 삶이 훨씬 나아졌어.”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체감이었고, 신뢰가 아니라 착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그렇기에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보이지 않으니 확신하기 어렵고, 보이지 않으니 의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이지 않으시기에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크기가 있고, 범위가 있고, 결국은 한계를 가집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그 어떤 틀에도 가두어지지 않으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엄밀히 말해 믿음이라기보다 사실을 인식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거기에는 위험도 결단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더 나아가 그렇게 믿기로 결단하고 실제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에 연약한지를 잘 아십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에 쉽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사실도, 확실한 증거 없이는 불안해한다는 것도 모두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아니 어쩌면 계속해서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외면이 아니라 배려이며, 침묵이 아니라 깊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믿는 맹목적인 신앙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치열하게 고민하고, 흔들리고, 두려워하면서도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신앙을 원하십니다. 길이 분명히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손에 잡히는 증거가 없는 자리에서, 더듬거리며 하나님을 찾는 그 과정 속에서 믿음은 얕아지지 않고 오히려 깊어집니다.
끝내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은, 보지 않고도 믿는 법을 배웁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우리의 믿음은 비로소 견고해집니다. 숨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그렇게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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