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자라오며 수없이 많은 규칙을 배워 왔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정상”인지, 무엇을 선택해야 “옳은지”, 어떤 모습이 “신앙적인지”를 말입니다. 세상은 물론이고, 때로는 교회조차도 우리에게 정해진 틀을 요구합니다. 질문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정돈된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의 내면은 그렇게 정돈되어 있지 않습니다. 믿음과 의심이 뒤엉켜 있고, 소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숨 쉬며,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들이 혼돈처럼 일렁입니다.
성경은 이 혼돈을 낯설어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시작부터 세상은 “혼돈하고 공허”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혼돈을 제거하지 않으시고, 그 위에 말씀하심으로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셨습니다. 혼돈은 배제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자리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혼돈을 죄처럼 여기며 억누르려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돼.” “이런 질문을 하는 건 믿음이 약해서야.”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검열하고, 다듬고, 감춥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꾸며낸 질서보다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더 원하십니다.
시편 기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혼돈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분노했고, 원망했고, 이해되지 않는 침묵 앞에서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정돈된 문장이 아니라 흔들리는 영혼의 날것 그대로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너의 혼돈을 사랑하라”는 말은 네가 기준이 되라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거짓된 질서를 포기하라는 초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를 완성한 뒤에 오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깨진 마음, 설명되지 않는 질문, 정리되지 않은 내면을 그대로 가지고 나오라고 부르십니다.
세상은 우리의 혼돈에 질서를 주입하려 합니다. 빨리 정의하라, 결론을 내려라, 방향을 정하라.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질문의 한복판에 오래 머물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통제에서 자라지 않고, 의존 속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직 하나님의 뜻이 다 드러나지 않았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베드로도 두려움 가운데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이 사라진 뒤에 부르시지 않고,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의 질문이 불편하고, 당신의 신앙 여정이 낯설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변명하거나, 스스로를 축소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려 애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는 점점 정복당합니다. 사람의 기준에 의해, 종교적 이미지에 의해, ‘이래야 한다’는 신앙의 틀에 의해 말입니다.
하나님은 복제된 성도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오직 하나뿐인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당신의 성격, 당신의 질문 방식, 당신만이 겪어온 상처와 혼돈까지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 다름이 바로 하나님이 사용하실 자리입니다.
혼돈을 사랑하라는 말은 혼돈에 머물라는 뜻이 아닙니다. 혼돈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 혼돈을 하나님께 가지고 가라는 뜻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당신만의 언어로 말씀하시고, 당신만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가장자리, 정리되지 않은 부분, 아직 이름 붙일 수 없는 마음, 그곳이 바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당신 자신이 되십시오. 그분은 이미 당신의 혼돈을 아시고, 그 혼돈을 통해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고 계십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편 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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