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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챙김

시레밀의 하루, 그리고 우리의 얼굴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8.

“인생이 당신에게 등을 내밀 때, 그것은 코를 부러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당신이 웃고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운 없는 사람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등을 쳐도 코가 부러진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말이 되지 않습니다. 등을 부딪혔는데 어째서 코가 부러진단 말입니까. 만일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마치 피카소의 그림처럼 인체의 질서가 뒤틀린 괴상한 장면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논리적인 말 속에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꿰뚫는 묘한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의 민담에는 바로 이런 사람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시레밀’입니다. 시레밀은 찰리 채플린 영화 속 인물처럼, 무엇을 하든 어긋나고, 어떤 선택을 해도 결과가 비켜가는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세상이 늘 반 박자 늦거나, 한 발짝 어긋나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결과는 늘 그의 편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시레밀이 아침 식탁에서 빵을 들다가 실수로 떨어뜨리면, 그 빵은 반드시 잼이나 버터를 바른 쪽이 바닥에 먼저 닿습니다. 확률적으로는 반반일 텐데, 시레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세상의 중력은 묘하게도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또 시레밀이 우산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가 이어집니다. 반대로 우산을 두고 나가면, 하늘은 그를 놓칠 수 없다는 듯 소나기를 퍼붓습니다. 그가 초를 팔기 시작한 날부터는, 밤이 오지 않을 것처럼 해가 길어지고, 해가 지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사람들은 웃으며 말합니다. “그래도 저런 사람도 있는데, 나는 아직 괜찮은 편이지.” 바로 이 지점에서 시레밀 이야기는 단순한 우스갯소리를 넘어섭니다. 시레밀은 남을 비웃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거울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불운을 견디기 어려울 때, 더 불운한 이야기를 통해 숨을 고릅니다. “나만 이런 게 아니구나.” 이 짧은 깨달음은 생각보다 큰 위로가 됩니다.

유대인들이 이 시레밀 이야기를 많이 전해 온 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유대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유럽 사회에서 가난과 박해, 차별 속에 살아왔습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거리에는 성공한 영웅보다, 실패하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시레밀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자조이자, 생존을 위한 유머였고, 절망을 견디는 지혜였던 것입니다.

이런 속담도 전해집니다. “유대인은 참으로 운이 없다. 부스럼이 났을 때에는 약이 없고, 모처럼 약이 생기면 부스럼이 나지 않는다.” 이 말은 단순한 불평이 아닙니다. 삶이 얼마나 자주 타이밍을 어긋나게 만드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입니다. 우리가 절실히 필요할 때는 없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때에야 손에 쥐어지는 것들, 인생은 종종 이렇게 우리를 시험합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시레밀은 영락없이 뜨거운 스프를 흘린다. 그런데 꼭 자기 옷이 아니라, 다른 시레밀의 옷 속에다 흘린다.” 불운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연쇄적으로 번집니다. 나의 실수가 다른 사람의 고통이 되고, 다른 사람의 실수가 다시 나에게 돌아옵니다. 그래서 시레밀의 세계는 웃기면서도 씁쓸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씁쓸함 속에서 우리는 인간의 연약함을 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의 삶에는 시레밀의 순간이 있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어긋날 때, 선한 의도로 한 말이 오해를 낳을 때, 최선을 다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우리는 자주 스스로를 탓합니다. “내가 부족해서 그래.” 하지만 시레밀 이야기는 다른 목소리로 말합니다. “아니, 때로는 그냥 인생이 그런 거야.”

이 이야기가 주는 진짜 지혜는 여기에 있습니다. 불운을 신앙이나 도덕, 노력의 부족으로만 해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의 계산으로 설명되지 않는 어긋남이 있고, 그것을 웃음으로 견뎌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레밀 이야기는 절망의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잘 풀리지 않는 하루를 또 한 번 살아낸 사람의 이야기인 것입니다.

오늘 하루가 유난히 꼬이고, 아무 일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이렇게 한 번 말해 보아도 좋겠습니다. “그래도 나는 시레밀만큼은 아니야.” 그리고 그 말 한마디로, 다시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인생은, 그렇게 웃으며 버티는 사람 편으로, 아주 조금씩 기울어 가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웃음은 고난 속에서도 인간이 잃지 말아야 할 마지막 존엄입니다. 불운은 인간을 쓰러뜨리지만, 유머는 그를 다시 사람으로 세웁니다. 인생이 엉망으로 보이는 날에도, 웃을 수 있다면 우리는 아직 패배하지 않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