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됩니다. 상황을 탓하는 한 삶은 바뀌지 않지만, 책임을 선택하는 순간 삶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책임을 지는 자만이 자유롭습니다.”
살다 보면 일이 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어긋나기도 하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나 태도 때문에 상황이 뒤틀리기도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속에서 이런 말을 꺼냅니다. “저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됐어.” “운이 너무 없었어.” “난 늘 피해자야.”
어느 직장인이 있습니다. 그는 몇 번의 인사 이동에서 번번이 불리한 자리에 배치되었다고 느꼈습니다. 상사는 공정하지 않았고, 동료들은 자기 몫을 챙기기에 바빴습니다. 그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고, 회의 자리에서도 존재감이 사라졌습니다.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억울한 희생자다.” 그 정의는 잠시 마음을 보호해 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더 큰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바로 삶의 주도권이었습니다.
자신을 희생자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책임에서 한 발 물러서게 됩니다. 모든 원인은 밖에 있고, 나는 어쩔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선택할 것도, 바꿀 것도 남지 않습니다. 억울함은 쌓이지만, 삶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 번의 큰 실패를 겪은 자영업자입니다. 경기 탓, 정책 탓, 운 탓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말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 이런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이 상황을 만든 데에 나의 선택도 분명히 있었다.” 그 순간부터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지?”가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로 말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신을 비난하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다시 능동적인 존재가 됩니다. 상황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황 안에서 방향을 정하게 됩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등이 생길 때 우리는 쉽게 말합니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잖아.” “당신 성격이 문제야.” 그러나 이 말들은 관계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 보면 어떨까요? “이 관계에 내가 어떤 태도를 선택했는지 돌아보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고 싶어.” 이 한마디는 상대를 무너뜨리기보다, 관계를 다시 세울 가능성을 열어 줍니다. “너 때문에 희생하고 있어.”라는 말은 나를 약자로 고정시킵니다. 반면 “이 상황에 책임을 지겠어.”라는 말은 나를 삶의 중심으로 다시 세워 줍니다. 책임을 선택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상황에 끌려다니는 피해자도 아닙니다. 비록 환경은 같아도, 내 자리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책임은 무겁지만, 그 무게만큼 힘을 줍니다. 목적 없는 억울함 대신 방향이 생기고, 불안 대신 선택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책임은 우리를 옥죄는 족쇄가 아니라, 삶을 움직이게 하는 지렛대입니다.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이 상황의 책임을 지겠다.” 그 말 한마디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의 전환이 삶의 방향을 바꿉니다. 책임을 지겠다는 선택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지만,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임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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