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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110편 - 새벽이슬 같은 젊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4. 9.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는도다"(시편 110:3)

어린 시절,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본 적이 있습니까? 해가 채 오르기 전, 풀잎마다 송알송알 맺힌 이슬방울들이 희미한 빛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이는 그 순간에 손을 뻗어 이슬 맺힌 풀잎을 건드리면, 차고 맑은 물방울 하나가 손바닥 위에 굴러 떨어집니다.

크지 않습니다.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물방울 하나하나가 모여 대지를 흠뻑 적시고, 타오르는 팔레스타인의 한낮 햇볕 아래서도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슬이 없다면, 그 땅의 생명은 불볕 아래 시들어 버릴 것입니다.

시편 110편은 메시아 왕의 노래입니다.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노래한 이 시는,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시온에서 다스리고, 원수들이 그 발 아래 굴복하며, 의의 지팡이가 온 땅에 뻗어 나가는 날을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 장엄한 통치의 한가운데, 시편 기자는 이런 장면을 그려 넣습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아오는도다"(시 110:3).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 왕이 부르는 소리에 아침이슬처럼 밀려드는 젊은이들의 무리, 이 이미지 하나가 가슴 깊이 박힙니다.

어느 선교사가 아프리카 오지 마을에서 사역하며 겪은 이야기입니다. 마을은 가난했고, 내전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어른들은 지쳐 있었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선교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작은 학교를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새벽마다, 아직 동도 트기 전에, 아이들이 하나둘 학교 마당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가방도 변변치 않고, 신발도 없는 아이들이었지만, 그 눈빛만은 이슬처럼 맑고 빛났습니다. 선교사는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나를 살렸습니다. 내가 그 아이들을 가르친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의 새벽이슬 같은 눈빛이 나를 소생시켰습니다."

그렇습니다. 젊음은 언제나 그런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타들어 가도, 새벽이슬처럼 맑고 둥글게 돋아나는 청춘이 있는 한, 그 땅은 마르지 않습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 펴낸 달력 한 귀퉁이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습니다.
"이슬은 작다. 그러나 맑고, 둥글둥글 모나지 않다. 짧은 삶이지만, 존재하는 동안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삶을 산다. 이슬이 하늘의 보물인 까닭이다." 달력 한 장에 적힌 짧은 문장이었는데,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이슬의 생애를 생각했습니다.

이슬은 새벽에 태어나 해가 뜨면 사라집니다. 짧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이슬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을 합니다. 빛을 머금고 빛납니다. 땅을 적십니다. 생명을 잇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늘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청춘의 소명 아닐까요?

화려하게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있는 동안 맑게, 둥글게, 아름답게, 그리하여 내가 지나간 자리에 생명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새벽이슬의 삶이고, 시편 기자가 꿈꾼 메시아 왕의 청년들의 삶입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위대한 부흥의 시대마다 언제나 청년들이 있었습니다.

18세기 영국, 존 웨슬리가 노방 설교를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온 것은 탄광촌의 젊은 광부들이었습니다. 신학 논쟁을 이해한 것도 아니었고, 교회 제도에 익숙한 이들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소리에 이슬처럼 몰려들어, 눈물로 회개하고, 노래하며, 영국 사회의 밑바닥을 뒤흔들었습니다.

19세기 조선 땅에 복음이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새벽기도가 무엇인지, 성경이 무엇인지도 몰랐던 젊은 조선의 청년들이, 마치 새벽이슬처럼 예배당으로 흘러들어 조선의 새벽을 바꾸었습니다. 청년들이 움직이면 역사가 움직입니다. 새벽이슬이 대지를 적시면 꽃이 피듯이 말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청춘들을 바라봅니다.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취업의 문은 좁고, 집값은 하늘을 찌르며, 미래는 안개 속에 가려 있습니다. 교회는 고령화를 걱정하고, 광장에는 냉소와 분열의 목소리가 넘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편 110편의 그 장면을, 아침이슬처럼 메시아이신 그리스도 예수께로 몰려드는 청년들의 무리를 생각하며 여전히 꿈을 꿉니다. 이슬은 크지 않아도 됩니다. 강물처럼 요란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맑으면 됩니다. 모나지 않으면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내려앉은 그 작은 자리에서, 있는 힘껏 땅을 적시면 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그 작은 이슬방울 하나하나를 모아 부흥의 강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기뻐하는 젊은이들이 교회와 역사의 새벽을 다시 소생케 하는 날, 새벽이슬이 온 대지를 덮는 그 이른 아침처럼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