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난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시편 107:28)
인생에서 가장 솔직한 언어는 비명입니다. 철학자는 고통을 설명하려 하고, 신학자는 고통의 의미를 찾으려 하지만, 정작 고통 한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저 소리를 지릅니다. "살려주세요." 그 단순하고 절박한 외침이 바로 기도입니다. 시편 107편은 바로 그 자리, 다시 말해 설명이 불가능한 고통의 현장에서 터져 나온 부르짖음의 기록입니다.
사막을 헤매는 나그네를 상상해보십시오. 가야 할 도시는 있는데 길이 없습니다. 물이 없고 먹을 것도 없습니다. 몸은 한계에 다다랐고 영혼은 그보다 먼저 쓰러집니다. 시편 기자는 이 장면을 이스라엘 역사의 한 장면으로 읽습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낯선 땅을 떠돌던 민족, 집이 있었지만 돌아갈 수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나그네는 있습니다. 이민 1세대로 이국땅에서 수십 년을 살아온 어느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향도 잃었고 새 땅도 자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그때 기도밖에 없었어요. 기도가 제 주소였어요." 시편 기자가 말하는 나그네의 상황이 바로 그것입니다. 길을 잃었을 때,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은 그를 바른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어둠과 그늘 속에 앉아, 쇠사슬에 묶인 죄수들에 대한 시편 기자의 묘사는 놀랍도록 구체적입니다. 시편 107편의 두 번째 장면은 감옥입니다. 그런데 시인은 그 감금의 원인을 단순히 외세의 폭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지존자의 뜻을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솔직한 고백입니다. 고통에는 때로 자기 몫의 책임이 있습니다.
어느 중독자 갱생 시설의 이야기입니다. 그곳에 찾아온 한 남자는 스무 살부터 알코올에 의존해 살았습니다. 가족을 잃었고, 직업을 잃었고, 자존감을 잃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내가 감옥을 스스로 지었어요." 외부의 쇠창살이 아니라, 자기 선택이 만든 감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설에서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고, 소리 내어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편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하나님이 그를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 결박을 끊으셨다."
세 번째 장면은 병입니다. 시편 기자는 죄악의 길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음식을 먹지 못해 죽음의 문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라는 뜻이 아닙니다. 시편 기자가 말하는 것은, 인간의 유한성 앞에 서게 될 때 비로소 인간은 진실해진다는 것입니다.
어느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사람들 중에 무신론자를 거의 보지 못했어요." 평생 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던 사람들도, 마지막 순간에는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다는 것입니다. 그 손짓이 기도입니다. 존재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인간은 마침내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시편은 그 순간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그의 말씀을 보내어 치료하셨다."
마지막 장면은 바다입니다. 이 대목에서 시편 107편은 가장 강렬한 시적 언어를 쏟아냅니다. 파도가 하늘까지 치솟고 배는 술 취한 사람처럼 요동치며, 뱃사람들의 지혜는 사라지고 혼란만 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항해의 위험이 아닙니다. 인생이 통제 불가능해지는 순간, 모든 경험과 지식과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는 그 순간의 묘사입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한 일본인 어부는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는 것을 보며 배를 더 깊은 바다로 몰았다고 합니다. 얕은 곳에 있으면 파도에 쓸려가지만, 깊은 바다에 있으면 파도를 넘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역설이지만,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 구원이었습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폭풍이 몰아칠 때 얕은 신앙은 무너지지만, 깊은 부르짖음은 오히려 더 깊은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그들이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광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물결을 고요하게 하셨다."
시편 107편에는 두 개의 후렴구가 네 번씩 반복됩니다. "그들이 고난 가운데서 주님께 부르짖을 때에, 주님은 그들을 그 고통에서 건지셨다." "주님의 인자하심을 감사하라. 사람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놀라운 구원을 감사하라." 이 반복은 지루함이 아닙니다. 확인입니다. 길 잃은 사람도, 감금된 사람도, 병든 사람도, 폭풍 속의 사람도, 고통의 종류는 달라도, 부르짖음의 결말은 같습니다. 구원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경험은 마침내 감사가 됩니다. 고통이 찬양으로 변환되는 것이 믿음의 연금술입니다.
시편 5권은 "감사하라"로 시작해 "찬양하라"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 시편 107편이 있습니다. 광야가 있고, 감옥이 있고, 병상이 있고, 폭풍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자리에서 인간은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기적은 고통 없는 인생에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 한가운데, 무릎 꿇은 자리에 옵니다.
지금 당신의 인생에 어떤 파도가 밀려오고 있습니까?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고 있습니까? 광야를 헤매고 있습니까? 혼자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까? 살아 있다면, 기도하십시오. 그 부르짖음이 하늘에 닿습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말입니다.
'시편 말씀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편 106편 - 회개가 농담이 아니려면 (1) | 2026.04.04 |
|---|---|
| 시편 105편 - 역사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 (0) | 2026.04.03 |
| 시편 104편 - 주님의 교실에서 배우는 창조와 사랑 (0) | 2026.03.30 |
| 시편 103편 - 젊음이 독수리처럼 (0) | 2026.03.28 |
| 시편 102편 - 변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지혜 (0) | 2026.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