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행하신 기적과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시편 105:5)
어떤 사람이 오래된 가족 앨범을 꺼내 들었습니다. 낡은 사진들 속에는 할아버지가 6·25 전쟁의 피난길에서 어린 자식들을 등에 업고 걷는 장면이 있고, 아버지가 IMF 위기 때 공장 문을 닫으면서도 직원들 월급을 챙기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앨범을 보는 방식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우리 가족이 참 고생 많이 했네"라고 읽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 모든 고비마다 우리를 붙들고 이끄신 분이 계셨구나"라고 읽는 것입니다.
시편 105편 기자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꺼내 드는 방식은 정확히 후자입니다. 그에게 역사란 인간의 분투 기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거룩한 이름을 걸고 행하신 일들의 목록이었습니다.
"그의 기이한 일을 기억하여라" 시편 기자는 첫 구절부터 명령형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 이것은 단순한 예배의 권면이 아닙니다. 일종의 세계관 선언입니다. 역사를 어떻게 읽을 것인지, 삶을 어떤 눈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근본적인 입장 표명입니다.
역사학자 가운데는 모든 것을 구조와 경제와 권력으로 설명하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역사는 강자가 약자를 지배한 기록이거나, 우연과 필연이 교차하는 거대한 흐름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다릅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배후에 일관된 의지와 신실한 약속이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이한 일"이라고 부릅니다. 기적이라고 해도 좋고, 섭리라고 해도 좋습니다. 요점은 이것입니다. 그 일들은 인간의 계획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걸고 이루신 약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가 가장 먼저 소환하는 이야기는 요셉입니다. 17절부터 22절까지, 그는 요셉의 생애를 단 여섯 절로 압축합니다.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내려간 요셉, 발에 착고가 채워지고 쇠사슬에 묶인 요셉, 그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셨는가?"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고난 한가운데 계셨다고 말입니다. 요셉의 발에 채워진 착고는 단지 형들의 시기와 주인의 아내의 거짓말이 빚어낸 불행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더 큰 구원을 위해 더 깊이 내려가는 준비였습니다. 결국 요셉은 바로의 궁정에서 총리로 세워졌고, 다가올 기근을 대비해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시편 기자가 강조하는 것은 요셉의 인내나 지혜가 아닙니다. 그가 가리키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고난이 섭리를 가릴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난은 때로 섭리가 가장 깊이 작동하는 통로가 됩니다. 마치 씨앗이 땅속에 묻혀야 싹을 틔우듯이 말입니다.
이어서 시편 기자는 출애굽 이야기를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을 부르셔서 애굽으로 보내셨고, 열 가지 재앙으로 강력한 제국을 무릎 꿇리셨다는 것입니다. 어둠, 피, 개구리, 파리, 우박, 메뚜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자의 죽음. 이 재앙들의 목록을 읽으면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묻게 됩니다. "왜 이토록 극적이어야 했습니까?"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상대가 당시 세계 최강의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자신이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의 권력은 신화적인 후광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 자에게 조용한 외교적 협상은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살아 있고, 내 백성은 내 것이다."
이것은 먼 옛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우리를 포로로 잡고 있는 '바로'들이 있습니다. 중독이 바로입니다. 두려움이 바로입니다. 타인의 시선과 성과 중심의 문화가 바로입니다. 그 모든 제국 앞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시편 105편의 절정은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주셨다는 선언입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이 사실을 단지 민족의 성공담으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서 시작되었음을 상기시킵니다.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역사를 이끌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역사가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무대라면, 내 인생도 그 무대의 일부입니다. 내 직장이 그 무대입니다. 내 가정이 그 무대입니다. 내가 날마다 마주치는 이웃과 동료들이 그 무대의 등장인물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기 위해 나를 그 자리에 두신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오지 마을에서 수십 년을 섬긴 후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이곳에 선교하러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살러 왔습니다. 그런데 살다 보니, 하나님이 나를 통해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시편 105편이 가르치는 삶의 방식입니다. 대단한 계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고 그 자리에서 신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시편 105편은 기도문이 아닙니다. 찬양이자 선언입니다. 역사를 향한 해석이자, 삶을 향한 초대입니다. 시편 기자가 이 긴 역사의 목록을 노래하면서 끝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십니다. 그분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자랑하십시오.
요셉의 착고 채워진 발도, 모세의 떨리는 손도, 광야의 메마른 땅도, 그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 앞에 놓인 낯선 상황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도, 기다림의 시간도 그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는 무대입니다. 그 무대 위에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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