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편 말씀 묵상

시편 145편 - 왕이신 나의 하나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4.

"여호와는 그를 부르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부르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시편 145:18,21)

역사 속에서 왕은 언제나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백성을 위해 존재하는 왕의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백성을 자신을 위해 존재하게 만드는 왕의 얼굴입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이 두 얼굴 사이에서 방황해 왔습니다.

사무엘 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
우리에게도 왕을 세워 달라"고 외쳤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엄중한 경고를 보내셨습니다. 그 내용은 섬뜩할 만큼 구체적이었습니다. "왕은 당신들의 아들과 딸들을 전쟁터로 내몰 것이고, 가장 건강하고 뛰어난 젊은이들을 자신의 병거를 끌게 할 것이며, 밭과 포도원의 소출 중 가장 좋은 것을 빼앗아갈 것이다. 양 떼의 십분의 일은 왕의 몫이 되고, 결국 백성은 왕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셨다"(삼상 8:10~19). 이것이 '사람인 왕'의 본질입니다. 그는 받는 존재입니다. 백성의 것을 취하고, 백성의 힘을 소모하고, 백성의 자유를 거두어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경고를 듣고도 왕을 구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왕, 주변 이방 나라들이 가진 것과 같은 왕을 원했습니다. 결국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흘러갔습니다. 사울은 교만해졌고, 솔로몬은 백성에게 무거운 멍에를 지웠으며, 르호보암은 그것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인 왕들의 이야기는, 요약하자면, 백성이 왕을 위해 존재했던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전혀 다른 왕이 있습니다. 시편 145편의 시인 다윗은 노래합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1절). 다윗은 평생 왕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왕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습니다. 신하들이 앞에 엎드리는 것이 무엇인지, 권력을 손에 쥔다는 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왕으로 부르지 않고 하나님을 왕으로 부릅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이것은 단순한 신앙 고백이 아니라, 다윗이 평생의 경험 끝에 도달한 가장 깊은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왕이신 하나님은 어떤 왕입니까? 시편 145편은 그 대답을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들려줍니다.
"주는 넘어지는 자를 붙드시며 굽은 자를 일으키시는도다"(14절). "모든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15절). "주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19절). 받는 왕이 아니라, 주는 왕입니다. 빼앗는 왕이 아니라, 채우는 왕입니다.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굽어보며 일으키는 왕입니다. 사람인 왕은 백성에게서 십분의 일을 거두어가지만, 왕이신 하나님은 굶주린 자의 입에 때를 따라 먹을 것을 넣어주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역전입니까?

20세기 초, 인도의 가난한 마을에서 한 선교사가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마을 이장이 그를 찾아와 말했습니다. "
당신네 하나님은 이상한 왕이오. 내가 알던 왕들은 모두 백성에게서 무언가를 요구했소. 세금이든, 노동이든, 충성 맹세든. 그런데 당신이 전하는 왕은 오히려 병든 자를 고치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스스로 죽었다는 거요? 그런 왕이라면 나는 섬기고 싶소." 그는 그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어쩌면 복음의 핵심을 가장 단순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는 '
착취'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왕이 백성을 위해 목숨을 내놓는 왕국,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이 왕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생계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고, 아이들이 아프면 밤새 곁을 지켰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들은 어머니가 자신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쏟아부었는지 조금씩 깨달아갔습니다. 그 깨달음이 깊어질수록, 아이들 안에서는 자연스럽게 한 가지 마음이 자라났습니다. 단지 받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 사랑에 응답하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도 그렇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큰 왕이신지를 알면 알수록, 그 왕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시편 145편 전체가 찬양으로 가득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두려움에서 나온 복종이 아닙니다. 사랑받은 자가 사랑하는 왕에게 드리는 자연스러운 응답입니다.

다윗은 노래합니다.
"대대로 주의 행사를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4절). "주의 크고 두려우신 일을 말하며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로다"(6절). 이 찬양은 쌓여갑니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사람의 입에서 또 다른 사람의 입으로 말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의 선하심이 알려질수록 찬양의 강물은 더 넓어집니다.

시편 145편은 히브리어 알파벳 스물두 자로 시작하는 각 절로 구성된 알파벳 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A부터 Z까지, 온 언어를 총동원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사람의 언어로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도, 왕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다 표현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21절). 새번역은 이것을 더욱 아름답게 번역합니다. "육체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영원히 찬송하여라."

모든 육체인 왕도, 신하도, 부유한 자도, 가난한 자도, 건강한 자도, 병든 자도, 언어도, 민족도, 시대도 넘어서, 왕이신 하나님을 알게 된 모든 존재가 함께 드리는 영원한 찬양이 시편 145편이 꿈꾸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
사람인 왕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나를 이용하려는 세상의 왕들, 나의 것을 취하려는 힘들 사이에서, 지치고 소진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이 시편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이 고백 하나가, 모든 것을 바꿉니다. 나를 착취하는 왕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하시는 왕, 나에게서 취하는 왕이 아니라, 나에게 주시는 왕, 나를 굽히게 하는 왕이 아니라, 굽은 나를 일으키시는 왕, 그 왕의 백성으로 사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왕을 찬양하며 사는 것은 더 큰 은혜입니다. 영원한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