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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146편 - 인생은 즐거운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5.

"내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46:2,5)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삶의 조건을 묻자, 한 노인이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 할 일이 있고, 저녁에 눈을 감을 때 함께 나눌 사람이 있으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나이 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데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는 삶의 목표를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사람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시편 146편의 시인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에게 즐겁고 행복한 삶의 첫 번째 조건은 무엇보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내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시 146:2). 이것은 감정이 좋을 때만 드리는 찬송이 아닙니다. 삶이 순탄할 때만 올려드리는 노래가 아닙니다. 이것은 결심입니다. 다짐입니다. 살아 있는 날 동안,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찬양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는 나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도 동료 수감자들과 함께 시편을 낭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자유도 없고, 미래도 보이지 않았으며, 결국 처형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
내 안에 기쁨이 있는 것은 환경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찬양은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믿음의 결단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찬양을 결심하기에 앞서 한 가지 경고를 먼저 건넵니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시 146:3). 왜냐하면 아무리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도, 아무리 능력 있어 보이는 사람도, 숨이 끊어지면 그 모든 계획이 한순간에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2008년 미국 금융 위기 때 수많은 사람이 하루아침에 평생 모은 재산을 잃었습니다. 믿었던 금융 기관이 무너지고, 신뢰했던 투자 전문가들이 사기꾼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자리에서 가장 크게 울었던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가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의지할 만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결정적인 순간에 스러집니다. 시편 기자는 이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영원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선택임을 역설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편 기자는 하나씩 천천히 열거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를 꼽으면 둘이 보이고, 둘을 꼽으면 셋이 보입니다. 이유가 쌓일수록 가슴이 점점 벅차오릅니다.

첫째로, 주님은 천지를 만드신 분입니다(시 146:6). 온 우주를 손으로 빚으신 분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광대한 창조의 하나님이 나를 알고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찬양은 충분합니다. 어떤 아이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집에 돌아와 울었습니다.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말했습니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아빠가 있잖아." 그 한마디에 아이의 울음이 멈췄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이 우리 삶의 가장 깊은 위안입니다.

둘째로, 주님은 억압받는 자들을 위해 정의를 행하시고,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시 146:7). 어떤 통계에 따르면 세상에는 아직도 하루 한 끼를 굶는 사람이 수억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현실 앞에 하나님이 무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배고픈 자의 신음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출애굽기의 하나님은 이집트의 노예 막사에서 들려오는 탄식 소리를 들으셨고, 결국 온 열방의 역사를 움직여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도 우리의 필요를 아십니다.

셋째로, 주님은 눈먼 자의 눈을 여시고, 굽은 자를 일으키시며, 나그네를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붙드십니다(시 146:8~9). 이것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실제로 하신 일들입니다. 맹인 바디매오의 눈을 여셨고, 중풍병자를 일으키셨고, 사마리아 여인을 품으셨고,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시편의 예언이 복음서에서 살아 숨 쉬는 사건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어느 요양원에서 매주 예배를 인도하는 자원봉사자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르신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몇 년이 지나고 나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저는 그분들에게 무언가를 드리러 갔는데, 정작 가장 많이 받은 것은 저였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두 손 높이 들고 찬양하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제 삶 전체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영혼을 정화시키고 세속의 욕심을 내려놓게 하는 내면의 작업이기도 합니다. 주님을 찬양하며 사는 사람은 얼굴이 다릅니다. 말이 다릅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그런 사람 곁에 있으면 이유 없이 편안하고, 그런 사람의 이웃이 되고 싶어집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90세가 넘어서도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해 직접 망치를 들고 집을 지었습니다. 말년에 뇌종양 진단을 받고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목표가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년은 쇠락이 아니라 완성이었습니다.

시편 146편의 시인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결국 이것입니다. 세속의 귀인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숨이 끊어지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님을 찬양하는 자는 다릅니다. 그에게는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붙잡고 계시고, 눈먼 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이 함께 걸어가고 계시며,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을 닮아 가며, 주님의 은혜를 하나씩 세어 가며 산다면, 어찌 삶이 기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은 즐거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