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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속으로

신기함을 지나, 주님 자신께 이르는 기도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6.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고린도전서 13:2)

기도에는 분명 여러 단계와 과정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를 하나의 기술처럼 생각하거나, 어떤 특별한 체험을 동반해야만
“잘하는 기도”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기도의 세계로 조금만 깊이 들어가 보면, 기도는 기술이 아니라 관계이며, 체험이 아니라 사랑의 깊이라는 사실을 점점 깨닫게 됩니다.

신앙의 초기 단계에서 많은 성도들이 경험하는 기도는 흔히
‘능력기도’, ‘은사적인 기도’라 불리는 것들입니다. 기도 중에 어떤 환상을 보거나, 음성을 듣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황홀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분명 강렬하고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기도를 특별하게 여기고, 그것을 가진 사람을 신령하다고 부르며 부러워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처음 사탕을 맛보고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듯, 영적인 어린아이 역시 기도의
‘맛’에 쉽게 사로잡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과 깊이 교통하시기 이전에, 우리의 연약한 육체와 감각을 통해 먼저 관심을 끌어주시는 과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어린아이를 달래듯 “기도가 이런 것이란다” 하고 보여주시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많은 이들이 이 단계를 목적지로 착각한다는 데 있습니다. 신기한 체험, 특별한 현상, 남들과 다른 경험들이 곧 영적 성숙의 증거라고 오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았느냐”, “어떤 음성을 들었느냐”, “얼마나 강력한 체험을 했느냐”가 신앙의 기준처럼 되어 버립니다. 그 순간부터 기도는 주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이 조금만 자라기 시작하면, 사람은 더 이상 신기한 장난감을 찾아다니지 않습니다. 기도의 초점이
‘무엇을 경험했는가’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로 옮겨갑니다. 높고 깊은 체험, 영적인 우열을 가르는 경쟁에는 점점 관심이 사라지고, 오직 주님 자신을 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 앞에 자신을 낮추고 복종하기를 원하게 됩니다.

기도의 세계에 어느 정도 들어가면, 우리는 영적 전쟁이라는 현실도 마주하게 됩니다. 악한 영의 역사, 어둠의 움직임, 인간 내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싸움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 단계에서 많은 이들이
‘전투기도’에 몰입합니다. 마귀를 대적하고, 악을 쫓아내며, 영적인 승리를 경험하는 데에서 강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이 또한 하나의 과정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단계에 오래 머무르는 것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전투에만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독교 신앙의 본질인 사랑과 안식, 누림과 여유, 따뜻함을 잃어버리기 쉽기 때문입니다. 전투는 목적이 아니라 과정입니다. 싸움은 결국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고 누리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신앙의 목표는 아닙니다. 만약 영적인 세계가 열렸다고 하면서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거칠어지고, 긴장과 분노 속에 머문다면, 그는 이기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속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은 사람을 더 부드럽게 만들지, 더 사납게 만들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는 또 다른 이유는,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말씀보다 자기 느낌과 기분, 혹은 영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의 말에 더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점점 흔들리고, 마음은 분주해집니다. 주님께서 이미 분명히 말씀하신 것보다, 오늘 내가 무엇을 느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 믿음은 방향을 잃게 됩니다.

기도 중에 뱀이나 호랑이, 용이나 귀신의 형상을 보고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 세상은 이미 죄와 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가 주님과의 교통을 놓는 순간 어디에서든 어둠은 작동합니다. 분노와 미움, 욕심과 죄가 인간의 마음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면서도, 악한 영의 활동만을 특별한 일로 여기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주님을 진정으로 의뢰하는 사람에게는, 그분의 보호와 주권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만큼의 고난과 훈련만을 허락하십니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귀신이나 마귀를 과도하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느 영성 깊은 목사님의 일화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어느 날 밤, 침대가 심하게 흔들려 잠에서 깬 그 앞에 커다란 마귀의 형상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 소리치지도, 대적 기도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하품을 하며 말했습니다.
“아, 너였구나.” 그리고 다시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는 주님의 허락 없이는 자신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신앙은 더 이상 작은 현상에 흔들릴 단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긍정적인 생각, 희망적인 사고가 넘쳐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생명이 아닙니다. 잠시 위로는 줄 수 있지만, 사람을 살리지는 못합니다. 참된 빛의 생각은 주님 자신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빛으로 둘러싸이게 됩니다. 마귀는 긍정적인 말이나 자기 암시에 크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께 경배가 드려질 때, 그는 견디지 못하고 물러납니다.

영적 세계를 보는 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태도 역시 위험합니다. 사람의 내면에서 움직이는 악과 분노는, 특별한 영안이 없어도 삶의 경험 속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보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으로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한 형제가 아내에게 센 마귀가 붙어 예수를 믿지 않는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험상궂은 형상이 보인다며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기도가 아니라, 더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부드럽게 대하고, 진심으로 섬기며, 따뜻하게 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강력한 영적 전쟁의 방식인 것입니다.

악한 영들은 거칠고 전투적인 분위기에서는 잠시 물러날 수는 있어도, 사랑과 따뜻함이 흐르는 곳에서는 견디지 못합니다. 부드러움과 배려, 진심 어린 섬김은 영적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것이 보일 때, 그것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주님의 말씀과 변치 않는 사랑을 신뢰하십시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해도,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십니다. 이 신뢰와 감사가 우리 삶을 누리게 하고, 신앙을 부드럽고 행복하게 만드는 진짜 원동력입니다. 기도의 끝은 전투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안식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