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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신앙으로 사는 삶 - 원수를 내 편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 요청과 은혜의 역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9. 7.

교회 안에도 이상하게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나를 볼 때마다 표정이 굳는 집사님, 사역을 함께할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히는 청년, 이유 없이 나를 경계하는 것 같은 사람, 세상 직장에만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은혜로 모인 공동체라 해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곳에는 늘 이런 껄끄러움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대개 두 가지 중 하나를 택합니다. 계속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추거나, 아예 마음을 닫고 거리를 둡니다. 그런데 둘 다 관계를 회복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겪어본 사람은 압니다.

18세기, 펜실베이니아 주 의회 서기로 일하던 젊은 벤저민 프랭클린에게는 그를 유난히 싫어하는 한 의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프랭클린이 하는 일마다 이유 없이 반대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의원을 피하거나, 똑같이 날을 세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프랭클린은 전혀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 의원이 아주 희귀한 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정중한 편지를 써서 그 책을 좀 빌려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의원은 흔쾌히 책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의원은 여러 모임에서 프랭클린을 좋은 사람이라고 소개했고, 진심 어린 친구가 되었습니다. 프랭클린은 훗날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
한 번 나를 도운 사람은, 내가 도운 사람보다 더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인지 부조화
심리학자들은 이 현상을 실험으로 확인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일치시키려는 본능적인 욕구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호의를 베풀고 나면, 마음속에서 이런 갈등이 생깁니다. "
나는 저 사람이 싫은데, 왜 도와줬지?" 이 불편한 모순을 해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행동을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사실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은 아닌가 보다." 이렇게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설득합니다. 결국 호의를 베푼 쪽이 오히려 상대를 더 좋아하게 되는 역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심리에 새겨진 하나의 원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아는 우리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이 원리를 만드신 분이 누구신지, 그리고 이 원리가 왜 이렇게 작동하도록 우리를 지으셨는지를 묻게 됩니다.

요한복음 4장,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는 수백 년 묵은 적대감이 있었습니다. "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고 성경은 굳이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런 담을 사이에 두고, 게다가 부정한 삶을 살아온 것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던 한 여인에게, 예수님은 놀랍게도 이렇게 먼저 말을 거십니다. "나에게 물을 좀 달라." 이 요청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여인은 당황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무언가를 내어줄 수 있는 존재로 대접받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정죄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여인에게서 무언가를 받으실 자리로 스스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요청의 틈으로 복음이 흘러 들어갑니다. 여인은 결국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달려가 "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전하는 첫 전도자가 됩니다.

프랭클린의 편지와 예수님의 물 한 모금 사이에는 방향이 다른 진실이 있습니다. 프랭클린은 자신을 위해 관계를 회복시키려 부탁했지만, 예수님은 한 영혼을 살리시기 위해 낮아지셨습니다. 그러나 원리는 같습니다. 담을 허무는 것은 논쟁이 아니라, 낮아져 내미는 손입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사랑스럽게 대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여전히 원수 되었을 때, 먼저 아들을 내어주셨습니다. 인간의 심리 원리를 뒤집어보면, 여기에 복음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세상은 "내가 호의를 베풀면 상대가 나를 좋아하게 된다"고 말하지만, 십자가는 그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님께서 원수 된 우리에게 먼저 최고의 호의, 곧 독생자를 내어주셨고, 그 은혜를 받은 우리가 마침내 그분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9절,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지금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있습니까? 은근히 나를 미워하는 것 같은 지체, 사역 파트너, 혹은 가족이 있습니까? 세상의 지혜는 참거나 피하라고 말하지만, 성경의 지혜는 다르게 움직입니다. 잠언 25장 21~22절은 말합니다. "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이니라." 로마서 12장 20~21절도 이 구절을 인용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명령합니다.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선배님, 이거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집사님, 이 부분은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여쭤봐도 될까요?" 이런 작은 요청 하나가, 굳게 닫힌 마음의 문 앞에 서게 하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두렵습니다. 거절당할까봐, 더 미움받을까봐,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도, 원수 된 우리에게 낮아져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제는 우리 곁의 불편한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 차례입니다. 그 손끝에서, 하나님께서 마음의 담을 허무시는 일을 시작하실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