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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살립니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8. 22.

로마서 5장 6~8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들어가며 - 조난선의 이야기

1912년 4월, 대서양 한복판에서 타이타닉호가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구명보트의 자리는 턱없이 부족했고, 많은 남자들이 여자와 아이들을 위해 자리를 양보했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그 밤을 "
인류애가 빛났던 순간"이라 기억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그 밤, 자리를 양보받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대부분 자기 자녀, 자기 아내, 적어도 함께 배를 탄 낯익은 얼굴들이었습니다. 사랑할 만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위해 자리를 내어준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7절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합니다. "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도 결국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향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다릅니다. 그분은 구명보트에 함께 타고 있던 가족이 아니라, 배가 침몰하는 순간에도 목숨바쳐 승객들을 끝까지 도운 바로 그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셨습니다.

1. 힘이 하나도 없을 때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한 응급실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밤새 심정지 환자를 살리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 환자는 의사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습니다. 감사 인사조차 할 수 없습니다. 숨도 쉬지 못하고, 심장도 뛰지 않는 그 사람은 그 순간 철저히 무력한 존재입니다. 의사가 그를 살리는 이유는 그 환자가 무언가를 할 수 있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의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
연약할 때"는 정확히 이 상태입니다. 몸살로 조금 힘든 정도가 아니라, 아무 힘도 쓸 수 없는 완전한 무력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이렇게 오해합니다. "내가 열심히 노력했더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셨다." 그러나 본문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손끝 하나 움직일 힘조차 없을 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향해 움직이셨습니다.

2. 하나님을 등지고 있을 때 -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어느 부모의 이야기입니다. 사춘기 아들이 집을 뛰쳐나가면서 부모의 얼굴에 대고 "
당신들이 내 부모라는 게 부끄럽다"고 소리치고 문을 쾅 닫고 나갑니다. 몇 달이 지나도 연락 한 통 없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부모는 무엇을 합니까? "그 애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계산하지 않습니다. 그저 달려갑니다.

본문의 "
경건하지 않은"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이 전혀 없는 상태, 즉 하나님을 등지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는 단순히 종교가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님을 밀어내고 있는 모든 사람의 실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우리가 예배당 문턱이라도 넘어서려 애쓰고 있을 때가 아니라, 정확히 등을 돌리고 있을 그 순간이었습니다.

3. 원수였을 때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가장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마을에 한 사람이 이웃의 재산을 훔치고, 그 이웃의 가족을 해쳤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 범죄자가 큰 병에 걸려 수술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마침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의사가 다름 아닌 피해자 가족의 자녀였습니다. 그 의사가 원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위험을 무릅쓴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사랑이라 부를 것입니다.

바울은 이보다 더 깊은 사실을 말합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과 무관한 존재가 아니라 "
원수"였습니다.(롬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런데 원수가 먼저 화해를 청한 것이 아닙니다. 원수 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 로마서 5장 6~8절 전체가 말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정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여기서 "확증하셨느니라"는 말은 법정에서 증거를 제시하듯 반박할 수 없이 입증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씀으로만 하지 않으셨습니다. 십자가라는, 지울 수 없고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역사 한복판에 세우셨습니다.

어느 화재 현장에서 소방관이 불 속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하고 자신은 전신 화상을 입었습니다. 훗날 그 소방관의 얼굴에 남은 흉터를 보며 사람들은 묻지 않습니다. "
저 사람이 정말 그 아이를 사랑했을까?" 흉터 자체가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남기신 흉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마다, 하나님은 말씀이 아니라 십자가를 가리키십니다.

마치며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착해지면", "내가 노력하면" 얻는 보상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로마서 5장 6~8절은 정반대를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힘이 없을 때, 등을 돌리고 있을 때, 심지어 원수 되었을 때 이미 확증된 사랑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사랑 앞에서 우리가 할 일은 자격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부어진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설명하지 않고 우리를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