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레위기27:30)
우리는 때로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단순히 교회 재정 운영의 도구쯤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십일조는 단지 ‘헌금’의 개념이 아니라, 훨씬 더 깊고 거룩한 영적 의미를 품고 있는 ‘신앙고백의 행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는 단순한 수입의 10분의 1이 아니라, 우리의 전 삶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믿음의 대표물’이며, 구속과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는 고백입니다.
레위기 27장 30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훈련을 마치고 약속의 땅에서 풍성한 소산을 얻게 된 백성들에게 그 첫 열매의 일부를 하나님께 돌리도록 명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이 땅과 그 소산은 너희가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은혜로 준 것이다. 그러니 기억하라. 너희 삶의 주인은 나 여호와다.”
십일조는 우리가 스스로의 수고로 얻은 결과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삶을 고백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것은 주께로부터 왔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릴 뿐이니이다”는 다윗의 고백(역대상 29:14)과도 같은 믿음의 고백입니다.
신명기 14장 22–23절은 십일조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줍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십일조는 단순히 바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먹고 즐기는 잔치로도 드려졌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은혜를 단지 의무적으로 기억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고 기뻐하며 감사하길 원하십니다. 그 나눔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경외함을 배우며, ‘은혜 위에 은혜’의 기쁨을 누립니다. 곧 십일조는 은혜에 대한 감사를 ‘생활로 훈련’하는 하나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십일조는 ‘맏물’이며, ‘대속’의 표징입니다. 성경은 십일조를 단순히 처음 난 것이나 가장 좋은 것이라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민수기 18장 12~13절에 따르면, 십일조는 “제일 좋은 것”, 즉 ‘대표’이자 ‘전체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곧 맏물은 단지 시간상 처음이 아니라, 질적으로 가장 귀한 것을 의미하며, 그 전체를 대신해 하나님께 드려지는 표징입니다.
출애굽기 13장과 민수기 3장에 이르러 이 개념은 ‘대속’이라는 강력한 신학적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처음 난 자는 다 내 것임은... 이스라엘 자손의 처음 난 자의 대신에 레위인을 내게 돌리고...”
십일조는 단순한 헌금의 개념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미리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의 장자를 대신해 하나님께 바쳐진 것처럼, 십일조는 전체 삶을 대표해 바쳐지는 ‘대속적 헌물’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 바쳐지신 복음의 핵심을 상징적으로 예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율례와 제사를 통해 장차 오실 ‘참된 대속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며, 모든 인류를 대표해 하나님께 바쳐지신 ‘온전한 십일조’이십니다. 그분 한 분의 희생을 통해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양이나 곡식의 십일조로 율법을 지키는 백성이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산 제사’로 살아가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롬 12:1).
우리는 십일조를 단지 ‘돈’의 문제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신앙 고백’과 ‘복음의 모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교회 운영을 위한 재정 확보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대표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복과 통치 안에 머무는 ‘언약적 행위’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은혜의 응답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복음으로 귀결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맏물로 하나님께 드려지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질을 드림은 우리의 ‘자아’와 ‘삶 전체’를 드리는 참된 경배의 표현이어야 합니다.
십일조는 율법이 아니라, 은혜의 복음 안에서 완성된 신앙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그 모든 은혜를 기억하며, 나의 삶에서 가장 좋은 것을 주님께 기쁨으로 드릴 수 있는 믿음과 감사를 회복하십시오. 그분은 여전히 우리 가운데서 자신을 드리신 맏물, 예수 그리스도로 복을 부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래전 한 시골 마을에 신실한 그리스도인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년 봄이면 씨앗을 뿌리기 전, 밭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곤 했습니다. “주님, 이 땅은 주의 것입니다. 제가 뿌리는 씨도 주의 것이며, 자라게 하시는 분도 주님이십니다.”
그 해도 똑같이 씨를 뿌렸고, 풍성한 수확이 기대되는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이상한 병충해가 돌면서 여러 밭의 작물들이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밭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밭 한쪽에 있는 밀 이삭들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다시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게 이 맏물을 허락하셨군요. 이건 제 것이 아니라 주의 것입니다.”
그는 가장 튼튼하고 알찬 첫 이삭을 따서 예배당으로 가져가, 감사의 예물로 드렸습니다. 사람들은 물었습니다.
“이 힘든 시기에 이 귀한 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농부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제게 생명을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첫 이삭은 단지 곡식이 아니라, 제가 전적으로 주께 속해 있다는 믿음의 표시입니다.”
놀랍게도, 그 농부의 밭은 이후로도 병충해를 피해 갔고, 그는 남은 작물로도 넉넉히 겨울을 날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의 믿음을 보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경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도는 하나님의 일이며, 우리는 그 일의 증인입니다 (0) | 2025.05.23 |
---|---|
십일조, 제사장, 그리고 진짜 복 – 멜기세덱과 예수 그리스도 (0) | 2025.05.23 |
물질 아닌 나를 드리는 헌금 (0) | 2025.05.23 |
모든 것을 드린다는 것 (0) | 2025.05.23 |
성경, 개혁,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0) | 2025.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