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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자의 길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19.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누가복음 14:27)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 그분은 이 땅에 살며 어떤 안전함도, 어떤 안식도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끝내 ‘머리 둘 곳’을 갖지 못한 채, 그렇게 떠나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오려는 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이것이 진짜 복음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믿는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복음의 외침 앞에서 과연 진지하게 반응하고 있는가요? 하나님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로 드러내십니다. 그것은 징벌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인간의 자아 확장, 인간의 도덕과 율법적 성취는 결코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길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붙들고 살아갑니다. 자아의 탑을 높이 쌓으며, 복음을 이용하여 자기 인생을 지탱하려는 지팡이로 만들고 있진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를 안다고 하면서도, 복음을 전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는 너무 많은 거짓 복음으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신비주의, 기복주의, 번영신학 등, 모두 하나같이 이 땅에서 내가 더 나아지고 싶다는 욕망의 산물일 뿐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더 잘 살기를 기대하고, 더 복을 받으리라 꿈꾸며, 결국에는 내가 주인인 신앙을 유지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주’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귀는 그런 인간의 욕망을 잘 압니다. 그는 우리에게 뿔 달고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강하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습니다. 그는 양의 탈을 쓰고 옵니다.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완전히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세상의 흐름 속에 사람들은 물 흐르듯이 끌려가고, 그렇게 복음을 아는 자들조차 진리와는 무관하게 살아갑니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조차 욕망의 대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도 무너뜨리십니다. 진짜 교회일지라도, 그 교회가 사람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순간, 하나님은 개입하십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결코 인간의 영광을 위한 무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인기도, 교인의 수, 유튜브 클릭 수, 외부의 칭찬 등, 그 어느 것도 하나님의 교회를 대표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오직 진리의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현장이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을 따라 걷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점점 더 소외되고 불편해지는 길을 걷게 됩니다. 예수가 걸으셨던 그 길, 머리 둘 곳 없이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그 길 말입니다. 그 길은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고, 하나님만 절대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는 반대되는 길이며, 때로는 토굴과 광야, 무명의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습니다.

계시록의 일곱 교회에서 반복되는 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그 이김은 무언가를 성취해낸 이들의 공로가 아닙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고 말합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김이며, 예수를 믿는 자는 결국 승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종국에 가서야 드러나고, 그 이김의 열매는 하늘의 보좌에 함께 앉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이 세상에서 치열한 고민과 자기부인을 통해 시험받습니다. 하나님과 일대일로, 죽는 날까지 부딪히며 싸워야 하는 여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가 얼마나 ‘선한 사람’이 아니라 ‘죽어야 할 존재’인지를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율법을 완성했노라고 자랑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입니다” 고백하는 세리의 자리에 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문은 넓지 않고, 그 길은 편하지 않습니다. 그 문은 자기를 내려놓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고, 그 길은 오직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자만이 걷게 됩니다. 진짜 복음은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인간의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자아를 부정하며, 십자가에서 함께 죽자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든 ‘별세’할 각오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머리를 떨구셨듯이, 우리도 이 세상에 머리 둘 곳을 마련하려 하지 말고, 오직 영생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씀’ 하나만 붙들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쫓아 십자가로 향할 때, 그 믿음이 우리의 이김이며, 그 길 끝에서 우리는 참된 생명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한복음 6:68~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