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서로 말하되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건설하는 그 성읍과 탑을 보려고 내려오셨더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서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세기 11:1~9)
사람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피하고 안정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쌓고’, 함께 ‘모이려’ 합니다. 그것이 도성일 수도 있고, 교회 건물일 수도 있으며, 혹은 정체성과 자기확신이라는 내면의 요새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자의적인 연합과 자기보존을 흩으시는 분이십니다. 그 흩어짐은 심판이면서 동시에 은혜이며, 깨뜨림이면서 동시에 다시 세우심입니다.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과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은 이 신비롭고 역설적인 하나님의 섭리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창세기 11장은 인류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 한 사건을 전합니다.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자"는 말은 겉으로는 연합이지만 실제로는 불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인류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1:28).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신의 안위와 명예, 자기 성취를 앞세워 하나의 중심에 모이기를 택했습니다. 이기적인 연합은 타인을 위한 배려가 아닌,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집단이 됩니다. 이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너무도 쉽게 반복되는 모습입니다.
바벨탑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하늘에 이르겠다는 시도, 다시 말해 자기 의로 하나님과 같은 높이에 서보겠다는 교만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은 이 탑을 허물지 않으십니다. 탑은 남겨두되, 언어를 흩으심으로 인간의 연합을 깨트리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탑보다 그 탑을 통해 하나 되려는 인간의 자기 중심성을 문제삼으셨기 때문입니다. 흩어짐은 심판처럼 보였지만, 실은 인간이 자신을 신격화하지 않도록 막으신 하나님의 자비였습니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 하니라"(행2:4) 이후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른 후, 사도행전 2장에서 하나님은 다시 언어를 흩으십니다. 그러나 이번엔 목적이 다릅니다. 바벨에서는 인간의 연합을 흩기 위해 언어를 나누셨고, 오순절에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다시 언어를 흩으십니다. 바벨의 흩어짐은 인간의 계획을 무산시키기 위함이었고, 오순절의 흩어짐은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인간이 자기를 위해 하나 되려는 시도는 항상 무너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하나 됨은 언어와 민족, 문화를 뛰어넘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의 출발은 놀랍게도 ‘성령 안의 흩어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8:19). 그리고 성령이 임하면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땅끝까지 흩어질 것을 명하셨습니다(행 1:8).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머물렀고, 하나님은 결국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교회를 흩으셨습니다(행 8:1). ‘흩어짐’은 교회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당파를 짓고 자신들의 안위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교회는 반드시 복음으로 흩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다시 모여서 예배하고 성찬을 나누지만, 다시 흩어져 세상 속에 복음을 살아내야 합니다. 흩어짐 없는 교회는 바벨탑처럼 인간의 자존심을 쌓는 공동체가 되기 쉽습니다.
흩어짐은 우리의 무너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나의 안에 있는 ‘작은 바벨탑들’을 마주했습니다. 나도 모르게 교회를 내 영향력 안에 묶어두려 하고, 내가 있어야 교회가 굴러갈 것이라는 오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우리는 그 안에 부르심을 따라 스피커처럼 잠시 사용될 뿐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 바벨탑들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의 열심, 조직력, 성과와 같은 인간적인 토대 위에 세워진 교회를 흩으십니다. 대신 십자가 위에 세운 교회만이 영원히 서게 하십니다. 흩어짐은 때때로 아프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참된 하나 됨을 향한 여정의 시작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계7:9~10)
요한계시록 7장에서 우리는 마지막 장면을 봅니다. 온 족속과 방언과 나라에서 흩어졌던 자들이 다시 하나로 모입니다. 그들은 단 하나의 고백을 합니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10). 자기 공로, 자기 열심, 자기 탑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고백됩니다. 이 고백을 할 수 있기 위해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를 흩으십니다. 우리의 탑을 무너뜨리시고, 우리를 세상 속으로 파송하십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삶이 무너지는 것처럼느껴지십니까? 계획하던 일이 흩어지고, 안정되던 공동체에서 떠나야 하거나, 통제하던 흐름이 멈춰버린 것 같으십니까? 그것이 혹 하나님의 ‘흩으심’이라면, 그것은 은혜입니다.
교회여, 흩어지십시오. 그 흩어짐 가운데서 우리는 자기 의를 부수고, 참된 하나 됨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함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탑을 쌓는 대신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하나 됨을 소망하십시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땅끝까지 흩어지되, 결국 어린양 앞에 다시 모일 자들입니다. 그 날에 우리의 모든 고백은 한 목소리일 것입니다. “구원하심이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성경 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0) | 2025.05.20 |
---|---|
믿음의 진정한 의미 (0) | 2025.05.20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신 예수 그리스도 (0) | 2025.05.19 |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자의 길 (0) | 2025.05.19 |
자유, 마음대로가 아닌 뜻대로 (0) | 2025.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