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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십자가 앞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8.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린도전서 1:13)

한국교회를 향해 가장 자주 들려오는 외침 가운데 하나는 “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입니다. 이 말은 언제나 옳아 보이고, 누구도 쉽게 반대할 수 없는 주장처럼 들립니다. 초대교회는 박해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재산을 나누었으며, 날마다 모이기를 힘썼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소망하며 살았던 교회로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대교회를 마치 이상적인 신앙 공동체의 원형처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초대교회 역시 오늘의 교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초대교회에도 분쟁이 있었고, 갈등이 있었으며, 인간의 악한 본성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 이면에는 과부 구제 문제로 인한 원망이 있었고, 혈연과 문화의 차이로 인한 긴장이 존재했습니다. 초대교회 역시 ‘
인간으로 구성된 교회’였던 것입니다.

고린도교회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세워진 교회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교회였지만, 그 안에는 심각한 분열과 파벌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두고 “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인간의 의지나 결단으로 가능한 요구가 아닙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나와 너’를 나누고, 비교하고,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 안에는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고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신앙의 다양성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서로를 정죄하며 우월성을 주장하는 분열의 구조였습니다. 특히 “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말하던 그리스도파는 가장 영적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가장 위험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권위를 부정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자기들만이 참되게 그리스도를 아는 자라고 주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파벌의 중심에는 공통된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랑입니다. 바울은 “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 묻습니다. 바울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까?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이 질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닙니다. 십자가 앞에서 인간이 무엇을 자랑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질문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자랑을 무너뜨리는 자리입니다. 십자가 앞에 선다는 것은 내가 옳은 사람이라는 주장, 내가 특별한 은혜를 받았다는 생각, 내가 더 나은 신앙을 가졌다는 모든 판단이 죽임을 당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고린도교회는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십자가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세례를 누가 주었는지, 어떤 사도를 따르는지, 어떤 가르침이 더 뛰어난지를 따지며 자신들의 신앙적 가치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에서 세례를 거의 베풀지 않은 것을 오히려 감사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세례를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 아니라, 세례가 복음보다 앞서거나 세례를 베푼 사람이 높임을 받는 상황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복음을 가리키는 표지이지, 신앙의 본질이 아닙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입는 것이지, 세례를 준 사람의 이름을 입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교회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세례를 구원의 보증처럼 여기고, 숫자로 자랑하며, 형식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확인하려는 유혹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에서 멀어질수록, 교회는 형식에 집착하게 되고, 형식은 곧 분열의 도구가 됩니다.

바울이 분열된 교회를 향해 다시 십자가를 증거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십자가만이 교회를 하나 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는 모든 인간을 동일한 자리로 데려갑니다. 모두가 죄인이고, 모두가 죽은 자이며,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사는 존재임을 고백하게 합니다. 이 고백 앞에서는 누구도 우월할 수 없고, 누구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안다는 것은 그 앞에서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옳다는 주장, 내가 특별하다는 생각, 내가 기준이라는 태도가 십자가 앞에서 무너질 때, 비로소 그리스도만이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분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십자가 신앙의 본질은 자기 부인이며 자기 포기입니다.

교회는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판단하지 않고, 서로를 자랑하지 않으며, 오직 은혜로만 서 있음을 고백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복음에서 멀어질수록 분열은 필연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를 따르고 있는가, 나는 무엇으로 나의 신앙을 확인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는 여전히 십자가 앞에 서 있는가, 십자가 복음은 인기 없는 말이 되었지만, 교회를 살리는 유일한 능력은 여전히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죽는 경험 없이는 참된 연합도, 참된 교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끊임없이 십자가를 들어야 합니다.

나는 안다”는 말 대신, “나는 여전히 십자가 앞에서 죽어야 할 자입니다”라고 고백하는 자리로 다시 나아가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교회가 교회 되는 자리이며, 그 자리가 오늘 우리에게 가장 절실히 회복되어야 할 자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