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농가에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가 찾아와 밥을 좀 달라고 했습니다. 그 집에는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비정하고 욕심많은 농부의 아내는 밭에 가서 다 썩어가는 마늘 줄기 하나를 뽑아주며 “이거라도 먹을 테면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나그네는 그것으로 겨우 배고픔을 달랬습니다.
세월이 흘러 농부의 아내가 죽어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 땅에 있을 때 좋은 일을 많이 했으니 천국에 보내주세요.” 그녀의 말에 천사는 생전에 그녀가 나그네에게 주었던 썩은 마늘 줄기를 보여주면서 이것을 붙잡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좋아하면서 한쪽 끝을 잡고 천사를 따라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오르기 전 썩은 마늘 줄기가 뚝 끊어져 농부의 아내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톨스토이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선행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할 기회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잠 17:5)
한 줌의 자비는 어떤 영혼에겐 생명을 구하는 손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손길이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자기 의의 껍데기로 포장된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아무런 능력도 없는 썩은 가지에 불과합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전하는 단편 속 이야기는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가 굶주림 속에 한 농가를 찾아와 먹을 것을 구합니다. 그 집에는 넉넉한 음식이 있었지만, 농부의 아내는 인색한 마음으로 썩은 마늘 줄기 하나를 던져줍니다. 그것은 그녀의 영혼이 가난한 자를 대하는 방식이요, 자비가 아니라 경멸로 위장된 시혜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녀는 죽음을 맞고 천사를 만나 천국행을 주장합니다. 그때 천사는 그녀가 행한 단 하나의 선행인 나그네에게 건넨 썩은 마늘 줄기를 들며 그것을 붙잡고 따라오라 합니다. 놀랍게도 그 썩은 줄기가 천국을 향해 끌어올리는 매개가 됩니다. 그러나 마늘 줄기 하나로 천국을 얻으려던 그녀의 기대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마늘 줄기가 뚝 끊어지고 그녀는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이야기는 마치 우리 신앙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우리는 종종 “선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설 자격이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 행위의 동기와 중심이 사랑이 아니라면, 그 ‘선’은 도리어 죄로 드러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조롱하는 자는 이를 지으신 주를 멸시하는 자요…” (잠언 17:5)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이웃을 멸시하는 행위는 단순한 무례를 넘어 창조주를 멸시하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특히 도움이 절실한 자, 연약한 자, 버림받은 자를 향해 사랑이 아니라 자만과 무관심을 드러낼 때, 우리의 본심은 낱낱이 드러납니다. 그 마늘 줄기 하나는 우리의 행위가 얼마나 공허했는지를 폭로하는 상징이 됩니다.
진정한 선행은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 ‘나는 주는 자’이고, ‘너는 받는 자’라는 우월감 속에서 베푸는 시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향기가 아닙니다. 주님은 감동 없는 형식의 자비가 아니라, 진심 어린 연민과 자기 희생을 통해 흘러나오는 자비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곧 십자가의 사랑이며, 은혜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행위로 얻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체험한 자는 그 은혜가 사랑과 긍휼로 열매 맺게 됩니다. 생명의 줄기를 붙들고 천국을 향해 나아가려면, 그것이 썩은 마늘 줄기여서는 안 됩니다. 그 줄기는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어야 하며, 우리의 선행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뿌리내린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주고 있습니까? 손에 쥐고 있는 것이 풍족한 은혜이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썩은 줄기 하나만 건네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자격 없는 자였으나, 예수님은 썩은 것이 아닌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땅히, 그 사랑을 따라 행해야 할 자들입니다.
주님, 제 마음이 인색함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은혜의 풍성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썩은 줄기 하나 던지며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지 않게 하시고,
주의 십자가 사랑으로 인해 날마다 새롭게 사랑하고 베풀게 하소서.
진정한 자비가 제 삶의 열매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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