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빌립보서 2:7)
머슴 목회자 이자익(1879∼1959) 총회장은 후배 목회자들에게 ‘큰 바위 얼굴’로 통합니다. 20여개 교회를 설립하고 세 차례나 장로교단 총회장을 지냈으면서도 명예나 권력, 재물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큰 교회의 청빙을 거절하고 작은 농촌교회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일제강점기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했습니다.
1942년 장로교 총회를 재건한 그의 행정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은 함태영 부통령이 장관 입각을 제안했지만 역시 거절했습니다. “지금까지 목회자로 살았으니 앞으로도 목사로 종신하겠다”는 게 대답이었다고 합니다. 70세 고령에도 장로회 대전신학교를 설립한 열정의 목회자였습니다. 교계 ‘법통’으로도 불렸습니다. 교계정치 흥정에 흔들림이 없었으며, 현행 장로교 총회의 헌법은 1953년 그의 손에 의해 전면개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전북 김제의 대지주 조덕삼(조세형 전 국회의원의 조부)씨와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 목사는 부모를 일찍 여의고 떠돌이생활을 했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고 집에 머슴 겸 마부로 받아들인 이가 조씨였습니다. 조씨는 어깨너머로 한글과 한자를 공부하는 그를 눈여겨봤고 자신의 아들과 똑같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가 끈끈해진 것은 미국 남장로교 최의덕(Lewis Boyd Tate) 선교사를 만나 함께 예수를 영접하면서입니다. 1902년 ‘ㄱ’자 교회 금산교회를 짓고 그해 가을 동시에 세례와 집사 직분을 받았습니다.
1907년 장로 1명을 투표로 선출할 때 교회 설립자인 조씨를 제치고 마부 출신인 이 목사가 장로로 선출됐습니다. 조씨는 이를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고, 집사의 직분으로 잘 섬겼습니다. 신분차별이 심했던 당시 상황을 감안하면 조씨의 태도는 예사롭지 않은 신앙 결단이었습니다.
조씨는 이 목사의 믿음을 귀히 여겨 평양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했고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전액 부담했습니다. 5년 뒤 그를 자신이 장로가 돼 섬기던 금산교회 담임목사로 청빙했습니다. 대지주가 자기 집안의 머슴이던 목사를 섬긴 셈입니다.
머슴 출신 이자익 목사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인물 전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땅에 오셔서 ‘종의 형체’를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역사하고, 또 그 사람을 통해 한국교회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셨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간증입니다.
이자익 목사는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고도, 그 어떤 명예와 권세에도 마음을 두지 않았습니다. 농촌의 작은 교회를 끝까지 지킨 그의 삶은 “오직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라는 성경 말씀을 있는 그대로 살아낸 모습이었습니다.
조덕삼 장로와의 일화는 더 큰 도전을 줍니다. 신분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절, 대지주였던 조 장로는 머슴 출신의 이자익을 장로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그를 자신의 목회자로 청빙했습니다. 이는 복음이 가져온 놀라운 역전이며, 성령이 주신 겸손과 사랑의 열매였습니다. 머슴이 주인이 되고, 주인이 머슴을 섬기는 이 거룩한 반전은 십자가 앞에서 모든 인간의 위계와 자랑이 무너지는 진리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이자익 목사는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그 어떤 타협에도 굴하지 않았고, 늦은 나이에 대전신학교를 세우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는 단순한 종교인이 아닌, 복음으로 완전히 사로잡힌 그리스도의 제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교회를 섬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그것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며, 권력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섬김의 자리입니다. 우리도 오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하면서 교회의 ‘머슴’이 되기보다 주인 되려 하고, 섬기기보다 인정받기 위해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형체를 입고 오셨습니다. 진짜 제자는, 진짜 목회자는, 진짜 성도는 결국 섬김의 자리에서 드러납니다.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서, 교회에서, 가정에서,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종이 되기를 거부하고 높아지기를 구하고 있는가?
머슴 출신이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 대지주를 섬기게 된 이야기 속에는 참된 복음의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더 이상 종도, 주인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만이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님의 ‘종의 형체’를 닮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기 위해 먼저 손을 내미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주님, 이자익 목사님처럼 자신을 비우고 종으로 살아가는 복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를 높이려는 마음을 꺾으시고, 주님처럼 낮아져 섬기는 삶을 살게 하소서. 복음 앞에서 모든 신분과 명예가 무너지는 참된 교회를 우리 시대에도 회복시켜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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