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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아가서 - 사랑의 병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6.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아가 5:2~8)

사람들은 사랑을 좋아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슴이 따뜻해지고, 누군가를 떠올리며 미소 짓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보고 싶은 마음’, ‘함께 있고 싶은 감정’, ‘기꺼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의지’ 정도로 이해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이해한 채 성경을 읽기 시작할 때 생깁니다. 특히 아가서를 읽을 때 그렇습니다.

아가서는 낭만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이 책은 인간의 사랑 이야기를 빌려 그리스도의 사랑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가서가 어렵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직 잘 모르고 있다는 고백일지도 모릅니다.

아가서 5장 8절에서 여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이른바 ‘상사병’입니다. 사랑 때문에 밥맛도 없고, 잠도 안 오고, 마음이 아픈 상태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곧바로 그리스도와 성도의 관계에 적용하려고 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나는 예수님을 병이 날 정도로 사랑하는가?’ ‘그렇게까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습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늘 기쁘지는 않고, 기도는 하지만 자주 미뤄지고, 말씀은 소중하다 말하면서도 세상의 일에 더 쉽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이런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이 말씀 앞에서 침묵하거나, 혹은 애써 스스로를 몰아붙힙니다. “더 사랑해야지.” “더 뜨거워져야지.” “이 정도로는 안 되지.” 그러나 아가서 5장은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본문이 아닙니다.

이야기는 여인이 자고 있을 때 시작됩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여인은 깊이 잠들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랑하는 자의 음성입니다. 머리에는 이슬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밤새 기다리며 찾아온 흔적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이 정도면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반응은 뜻밖입니다.
“내가 옷을 벗었으니 어찌 다시 입겠으며 내가 발을 씻었으니 어찌 다시 더럽히랴마는…” 너무 솔직합니다. 귀찮아 합니다. 다시 일어나기 싫어 합니다. 깨끗이 씻고 누웠는데 다시 움직이기 싫은 것입니다.
이 모습이 누구를 닮았습니까? 놀랍게도, 우리 자신입니다.

이 장면은 매우 일상적인 것입니다. 하루를 마치고 겨우 숨 돌리며 누웠을 때, 마음 한편에서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오늘 말씀 좀 읽어야 하는데…’ ‘기도 안 하고 잠들어도 되나…’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덮어버립니다. ‘너무 피곤해.’ ‘내일 하지 뭐.’ ‘하나님도 이해하시겠지.’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만, 당장은 반응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랑이 없어서라기보다, 내가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바로 그런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여인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여인의 결심일까요? 사랑의 열정일까요?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가 먼저 손을 들이민 행위였습니다. 여인은 스스로 마음을 일으킨 것이 아닙니다. 사랑이 그녀의 마음을 건드린 것입니다. 이 장면은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방향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문을 열 때, 이런 묘사가 나옵니다.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이 몰약은 여인의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가 남긴 것입니다. 그는 그냥 문을 두드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향기를 남겼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그 향기를 손에 묻힌 채, 그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것이 사랑의 병입니다. 사랑하겠다고 결심해서 생긴 병이 아닙니다. 사랑이 찾아와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생긴 병인 것입니다.

여인이 문을 열었을 때, 사랑하는 자는 이미 떠나 있었습니다.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 이 장면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신랑의 변덕이나, 시험이 아닙니다. 신랑의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닙니다. 그는 여인을 버린 것이 아니라, 여인을 찾는 자로 만드신 것입니다. 사랑을 소유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갈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말합니다.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이 병은 눈물이 나는 병이고, 찾게 되는 병이고, 만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병입니다. 성도의 사랑의 병이란 “내가 예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가 아니라 “왜 나는 이분의 사랑을 알고 싶어 하는가”에 대한 병입니다. 그분이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먼저 흔적을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더 이상 자신 있게 말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랑합니다!”라고 외치지 않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이 고백은 겸손이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것은 주께서 나를 먼저 찾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더 사랑하라”고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대신 찾아오십니다. 문을 두드리십니다. 손을 들이미십니다. 그리고 사랑의 향기를 남기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분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랑의 병이 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혹시 마음이 무디고, 귀찮고, 반응이 느리십니까? 그렇다고 좌절하지 마십시오.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면, 손에 향기가 남아 있다면, 이미 사랑은 시작된 것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니라 우리를 찾아와 병들게 하는 은혜입니다. 그리고 그 병은 살아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