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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민수기 - 얼굴을 비추신다는 것 (제사장의 축복)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수기 6:22~27)

우리는 누군가에게
“복 받으세요”라는 말을 쉽게 건넵니다. 예배가 끝날 때 목회자가 두 손을 들고 축복 기도를 하면, 익숙한 말처럼 흘려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축복’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민수기 6장에 기록된 제사장의 축복은 사람이 고안해 낸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는 계시입니다.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6:27) 제사장은 복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이름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복의 근원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제사장은 그 복이 어디서 오는지를 분명히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은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축복은
‘바라크’입니다. 이 단어의 첫 번째 뜻은 놀랍게도 “무릎을 꿇다, 엎드리다”입니다. 우리는 축복을 받는 자리에 서고 싶어 하지만, 성경은 축복을 무릎 꿇는 자리에서 시작한다고 말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축복은 대개 “잘됨”으로 이해됩니다. 성공, 건강, 안정, 확장, 인정.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이름 앞에 엎드리는 것,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내가 중심에서 내려오는 것, 그것이 축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2장의 헤롯은 가장 비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왕의 옷을 입고 단상에 앉아 연설합니다. 백성들은 외칩니다.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다!” 그 순간 헤롯은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인가, 아니면 자신이 받을 것인가, 그는 침묵했습니다. 아니,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벌레에 먹혀 죽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엔 그가 누리던 권력과 찬사는 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사람이 받는 순간,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 것입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제사장의 축복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우리는 ‘지키신다’는 말을 들으면 보통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을 떠올립니다. 사고가 없고, 실패가 없고, 아픔이 없는 삶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키심’은 전혀 다릅니다.

야곱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는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루스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들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야곱은 이 약속을 들었지만, 믿지 못했습니다. 그는 조건을 겁니다. “나를 지켜주시면, 그때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외삼촌 라반에게 속고, 자녀 문제로 눈물 흘리고, 결국 환도뼈가 부러진 채 절뚝거리게 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야곱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를 부러뜨려서라도, 상하게 해서라도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키심입니다. 편안하게 두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붙드시는 것입니다. 신약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입니다.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

제사장의 축복에서 가장 반복되는 표현은 이것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우리는 이 말을 은혜롭게 듣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얼굴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모세는 떨기나무 앞에서 얼굴을 가렸습니다. 기드온은 “내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노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왜그럴까요? 죄인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3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시되, 반석 틈에 숨기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그 반석은 무엇인가?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심판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생각하면, 복음서의 한 장면은 참으로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에 사람들이 침을 뱉습니다. 눈을 가리고 주먹으로 때립니다.
“선지자라면 맞힌 자가 누구인지 맞혀보라”고 조롱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하나님이 스스로 낮추어 보여주신 얼굴을 때립니다. 이것이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얼굴이,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묘사됩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침 뱉음당하신 얼굴이 영광의 얼굴이 되었습니다. 십자가에서 가려졌던 얼굴이, 부활과 승천으로 다시 빛난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한 가지 소망을 남깁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요한계시록 22장의 이 약속은 성경 전체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이유, 영생을 얻는 이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분의 얼굴을 보기 위함입니다. 지금 우리는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합니다. 말씀으로, 성령의 조명으로, 부분적으로만 압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면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 그 얼굴 앞에 무릎 꿇는 것이 영원한 복입니다.

제사장의 축복은 잘 먹고 잘 사는 주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디로 이끄시는지 보여주는 방향표지판입니다. 지켜주심은 편안함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으심입니다. 은혜는 죄인을 봐주시는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평강은 그 얼굴 앞에 설 수 있게 된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할 일은 하나입니다. 해처럼 빛나는 그 얼굴 앞에, 지금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 자리가 바로 축복의 자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