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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말씀 묵상

아가서 -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9.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아가 5:1)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이렇게 이해합니다.
“내가 열심히 살아서 좋은 열매를 맺고,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신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점점 성과중심이 됩니다. 기도 횟수, 봉사 시간, 헌신의 강도, 변화된 삶의 모습이 곧 믿음의 증거처럼 여겨집니다. 신앙은 어느새 하나님께 드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프로젝트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익숙한 신앙 감각을 정면으로 뒤집습니다.

아가서 5장 1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이 말씀을 가만히 읽어보면 매우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이 동산에서 신부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우리는 아가서의 동산을 이렇게 상상합니다. 신부가 정성껏 가꾸어 향기로운 꽃과 열매를 준비해 두고, 신랑이 찾아와
“참 잘했구나” 하며 그것을 기뻐하는 장면입니다. 마치 부모님 생신에 자녀가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선물을 준비해 드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정성과 수고가 귀하니 부모가 기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신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아가서 5장은 전혀 다른 장면을 보여줍니다. 신랑은
‘내 동산’에 들어와 ‘나의’ 몰약, ‘나의’ 꿀, ‘나의’ 포도주를 먹고 마십니다. 동산도 신랑의 것이고, 열매도 신랑의 것입니다. 신부의 수고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신부의 성취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장면은 창세기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 곧 자기가 수고해 얻은 것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 하나님께 속한 생명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문제는 정성이 부족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가인의 제사는 철저히
‘나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다르지 않습니다. 열심히 만든 변화, 노력으로 쌓은 경건, 눈에 보이는 신앙의 성과를 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낙심하거나 분노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관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을 받지 않으십니다.

아가서에서 신랑이 들어간 동산은 이미 완성된 동산입니다. 이 동산은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된 그리스도의 세계를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몸을 성전이라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는 성령 받은 성도를 하나님의 성전이라 합니다. 이는 성전이 둘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연합된 자만이 성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신앙의 큰 오해가 시작됩니다.
“내가 성전이니 더 거룩하게 살아야지.” “행실로 성전을 더럽히지 말아야지.” 이 말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이루어진 거룩함 위에 내 행실이라는 천을 덮어씌우는 것이 바로 성전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마치 명품 옷 위에 누더기 외투를 걸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순간 드러나는 것은 명품이 아니라 누더기입니다.

아가서 5장 후반부에서 신랑은 말합니다.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 동산에 초대받은 자들은 준비물이 없습니다. 열매를 들고 오라는 말도 없고, 자격을 증명하라는 요구도 없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라는 초대만 있을 뿐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안’이라는 신앙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이루고 증명하고 싶어 하지만, 복음은 끊임없이 말합니다. “다 이루었다.” 신앙은 완성에 참여하는 것이지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경주가 아닙니다.

이 신앙은 매우 불편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랑할 것이 하나도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열심도, 내 변화도, 내 신실함도 모두 신랑의 동산에서는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리에서 참된 자유가 시작됩니다.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실패해도 흔들리지 않는 자유, 우리가 붙들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은 우리가 귀하게 여기던 것을 쓰레기처럼 여기게 만들고, 오직 주의 이루심만을 존귀하게 만듭니다.

신랑의 동산에서 신부가 할 일은 하나입니다. 기뻐하고, 감사하고, 누리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찾기보다 말씀 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을 발견하는 것이 성령의 전으로 사는 삶입니다.

오늘도 신랑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내 것을 먹고 마셨다. 그러니 너희도 함께 누리라.” 이 초대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무엇을 가져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빈손으로 들어가 그분의 완성을 함께 기뻐하면 됩니다. 이것이 복음이고, 이것이 신앙인 것입니다.